[공동주택 조경공간] (14) 개포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겨울은 여러분에게 어떤 풍경으로 그려지나요? 보통 ‘조경’하면 짙은 녹음과 갖가지 색의 꽃이 만발한 풍경을 기대하게 되죠. 겨울의 자연은 조금은 휑하고 허전한 느낌일지 모릅니다. 봄부터 여름 내내 땅속 수분을 흠뻑 빨아올려 잎과 꽃을 피웠던 나무는 가을을 지나며 단풍으로 물든 잎을 떨어뜨립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몸 속 수분을 다시 땅속으로 내려보내죠. 모든 것을 내려놓는 계절이기에 겨울의 풍경은 공허해 보일 수밖에요.

그러나 겨울의 자연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계절에서는 만날 수 없는 매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녹색이 사라진 풍경에서 진녹색 바늘잎의 상록침엽수는 더욱 돋보입니다. 바람을 따라 흩날리는 억새와 사초 등 그라스도 늦가을이 지나면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죠. 겨울은 잎이 떨어진 나뭇가지의 형태와 껍질의 질감을 감상하기에도 좋은 계절입니다.

오늘은 매력적인 겨울의 풍경을 가진 공동주택 조경공간 한 곳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인데요. 허전하게만 보였던 겨울의 자연에서 숨은 매력을 찾아보기 바랍니다. 

진녹색 잎을 오롯이 유지하는 상록침엽수의 존재감
진녹색 잎을 오롯이 유지하는 상록침엽수의 존재감

 

다양한 그라스 통해 겨울 풍경 채워

대부분의 수목이 잎을 떨구는 겨울눈을 드러내는 이때, 진녹의 잎을 오롯이 유지하는 상록침엽수의 존재감은 적지 않습니다. 특히 원뿔 모양의 수형이 특징인 주목은 동선이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네모반듯한 공간에서 정형미를 부각하죠. 유럽에서 활을 만드는 데 사용했을 정도로 치밀하고 탄력 있는 주목의 목질은 요즘같이 추운 계절에 특히 더 강인하게 느껴집니다. 

거친 붓칠의 질감을 닮은 향나무는 어떤가요? 예부터 그 향이 정신을 맑게 하고 부정한 것을 씻어낸다고 해 선조들이 궁궐과 사찰에 많이 심었다지요. 향나무는 겨울의 풍경에서 빠질 수 없는 수목입니다. 금방이라도 하늘로 솟아오를 것만 같은 스카이로켓향나무, 둥글둥글한 옥향나무 등 향나무가 갖는 가지각색의 수형은 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만들죠.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는 다양한 그라스를 통해 겨울의 풍경을 채워나갑니다. 장송 아래에 미술장식품을 배치하고 주변에 바람 따라 흩날리는 억새와 붉게 물든 남천을 둘러 심었습니다. 시각과 청각 그리고 촉각이 어우러진 공감각적 경관을 선사하죠. 그 사이로 디딤석을 두고 벤치를 놓은 것을 보면, 분명 조경가는 사람들이 이 감각을 경험하게끔 의도했을 겁니다. 

나아가 단지 곳곳에 다양한 종류의 그라스를 섞어 심어 마치 자연의 한 자락을 옮겨온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풍경은 네덜란드 출신의 정원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Piet Oudolf)가 지향하는 자연주의 정원과 매우 닮아있습니다. 아우돌프는 조경공간이 미적으로든 생태적으로든 자연에 더욱 가까워지기를 바라며 기존의 인위적인 방식에서 탈피한 새로운 식재디자인을 제안했었죠. 

계절이 변함에 따라 다채로운 꽃과 풀을 피워낼 이곳
계절이 변함에 따라 다채로운 꽃과 풀을 피워낼 이곳

이렇게 탄생한 그라스 공간은 계절이 변하면서 다채로운 꽃과 풀을 피워낼 것입니다. 그것들은 옆에 핀 다른 꽃, 풀과 조화를 이루며 향유할 수 있는 감각들을 한층 더 풍성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줄 테죠. 여름에 핀 리아트리스와 꼬리풀의 꽃이 만들어낸 보랏빛 그라데이션이나 참억새 모닝라이트를 배경으로 핀 러시안세이지의 허브향처럼 말이에요. 

겨울은 나무의 줄기와 가지를 유심히 살펴볼 수 있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시선을 사로잡았던 꽃이 지고, 가지를 가득 채웠던 잎이 떨어졌기 때문이죠. 여러분은 나무마다 가지를 뻗는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아시나요? 은행나무나 미루나무는 가지가 줄기에 거의 평행하며 수직에 가깝게 자라고, 산수유나 반송은 일정 높이의 주간 이상에서 가지가 무성하게 뻗어나가죠. 나무줄기의 껍질을 뜻하는 수피를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것도 겨울에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종이처럼 얇게 벗겨지는 자작나무의 흰색 수피와 녹색과 회녹색, 주홍색이 어우러진 매끄러운 모과나무의 수피는 어떤 꽃과 열매보다도 아름답죠.
 

놀이터・운동시설 컬러 도입 돋보여

겨울이면 자연은 색감을 거둬들이기 시작합니다. 마치 채도를 떨어트린 사진처럼 풍경에 회색빛이 감돌죠.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는 어린이놀이터와 주민운동시설 등 여러 시설물에 화려한 색감을 도입해 채도가 낮아진 풍경에 어메니티(장소와 분위기가 주는 즐거움)를 덧칠합니다. 먼저 119동과 120동 앞 어린이놀이터에는 파스텔 계열의 화려한 색감을 담은 조합놀이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른 봄 싹을 틔우는 연둣빛 새싹과 분홍색과 보라색, 하늘색으로 이어지는 꽃봉오리를 형상화한 조합놀이대는 자연의 색이 주춤한 이곳에서 단연 돋보입니다. 겨울 잠시나마 시설물의 화려함이 자연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죠. 

하늘 위 구름 속에서 뛰어노는 토끼를 형상화한 어린이놀이터
하늘 위 구름 속에서 뛰어노는 토끼를 형상화한 어린이놀이터

어린이집과 경로당 앞의 또 다른 어린이놀이터의 색감도 이에 못지않습니다. 하늘 위 구름 속에서 뛰어노는 토끼를 형상화한 이곳은 짙은 파란색과 하늘색, 흰색을 배경으로 금색의 포인트를 줬는데요. 하늘 속 놀이공간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조합놀이대 공간 대부분을 공중에 띄우고 다양한 높이와 코스의 미끄럼틀을 배치한 점이 눈에 띕니다. 

풍선을 놓친 토끼가 깜짝 놀라 구름 위에서 번쩍 뛰어오르는 장면은 단연 백미인데요. 토끼의 눈, 코, 입 등 세부적인 묘사를 줄이고, 몸의 형태를 삼각형과 사각형 등 도형으로 표현하는 지오메트릭 디자인(기하학적 패턴)을 적용했습니다. 이러한 추상적인 디자인은 아이들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바탕이 되죠. 겨울의 풍경을 수놓는 화려한 색감은 주민운동시설에서도 이어집니다. 외부 공원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개별 운동기구의 단순한 나열이 아닌 동작의 루틴을 고려한 코스형으로 주민운동시설을 계획했는데요. 라임색의 포인트는 운동기구의 디자인을 관통하며 전체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웅장한 현관 구조물, 상징적인 경관

겨울의 풍경은 공간의 구조와 틀을 자연스레 드러나게 합니다. 여름날 녹음으로 짙던 산에 겨울이 찾아오면, 잎이 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 산의 능선과 하늘이 맞닿는 경계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렇다면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에 찾아온 겨울은 어떤 공간의 구조와 틀을 드러나게 하고 있을까요? 

주동 출입구마다 세워진 웅장한 현관 구조물
주동 출입구마다 세워진 웅장한 현관 구조물

첫째는 주동 출입구마다 세워진 웅장한 현관 구조물입니다. 웬만한 공동주택 단지의 문주에 버금가는 크기와 높이로 세워진 이 구조물은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의 상징적인 경관으로 기억되기에 충분하죠. 1층과 2층의 분양면적을 과감히 포기하고, 현관의 천장을 2층까지 끌어올려 층고를 높이는 전략을 통해 진입공간의 개방감과 웅장함을 배가시켰습니다. 특히 구조물을 현관 전면으로 길게 뽑아냄으로써 사람들이 인지하는 구조물의 크기를 더욱 크게 만들었는데요. (그림 1, 2)

구조물의 실제 높이는 2층 정도이지만 앞으로 길게 돌출시킴으로써 관찰자의 시야각을 크게 키울 수 있죠. 이는 관찰자의 시야에서 대상의 크기가 실제보다 크게 인식되는 효과를 줍니다. 특히 구조물의 마감재로 활용된 화강석 석재가 인상적인데요. 흑운모가 적어 밝은 흰색을 띠고, 마치 강물이 흘러가는 무늬를 가진 리버화이트 계열의 화강석은 전체적으로 밝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석재 마감은 자전거보관소와 커뮤니티시설 등 지상부 시설에 적극적으로 활용돼 이곳만의 특별한 디자인 요소가 됐죠.
 

화강석 장식벽, 미술품의 훌륭한 배경

둘째는 조경공간의 틀을 잡아주는 장식벽입니다. 식재의 화려함이 한 걸음 비켜선 자리에 대견하게도 그 자리를 채워 내는데요. 장식벽은 연한 황색을 띠는 화강석인 호피석 조각을 쪼개 붙여 마감했군요. 오랫동안 참 많은 단지의 조경공간에 적용됐을 만큼 클래식한 디자인이자 스테디셀러입니다. 돌의 색감이 주는 따뜻함과 녹색의 식재와의 조화가 흠잡을 곳 없죠.

호피석 조각을 쪼개 붙여 마감한 장식벽
호피석 조각을 쪼개 붙여 마감한 장식벽
너른 잔디밭의 높낮이를 조율하는 단의 역할을 하는 장식벽
너른 잔디밭의 높낮이를 조율하는 단의 역할을 하는 장식벽

현관 구조물의 마감재로 사용된 리버화이트 계열의 화강석은 장식벽에도 활용되는데요. 101동과 132동으로 둘러싸인 너른 잔디밭에는 타원 형태의 커뮤니티카페 건축물과 반원 형태의 미술장식품이 놓여있습니다. 화강석 장식벽은 미술장식품 뒤에서 파동의 형태로 오르내리며 작품의 훌륭한 배경이 되어줍니다. 화강석 장식벽은 너른 잔디밭의 높낮이를 조율하는 낮은 단의 역할을 하는데요. 마치 지형도의 등고선처럼 화강석 띠는 잔디밭을 곡선으로 휘감으며 공간의 틀을 잡아줍니다. 커뮤니티카페와 미술장식품을 관통했던 곡선의 디자인 언어가 지형 전체로 퍼지는 셈입니다. 

지금까지 함께 살펴본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의 조경공간 어떠셨나요? 여러분들이 생각했던 허전하고 스산했던 겨울의 풍경이 이제는 조금 새롭게 그려지나요? 잎과 꽃이 떨어지는 계절이기에 비로소 두드러질 수 있었던 수목의 매력과 자연의 빈자리에서 드러나는 어메니티의 색감 그리고 공간의 틀이 겨울의 가치를 떠올리게 해줍니다.

 

 


공간서술   |  서울대학교에서 지리와 조경을 공부했다. 건설회사의 조경부서에서 설계, 견적, 시공 업무를 수행하며 좋은 조경공간에 대한 감상과 조경공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콘텐츠 기획자(Planner)와 시공엔지니어(Engineer)라는 두 업을 가로지르며 공간과 조경에 관한 가치를 전하는 플랜지니어(Plangineer)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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