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지 않고 코에 꿰면 이혼은 없어지게 된다.” 프랑스 작가 쥘 르나르의 말이다. 

세계적 부호들의 역사상 가장 비싼 ‘세기의 위자료’가 이따금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2019년 이혼하며 아마존 주식의 4분의 1 지분(356억 달러 규모)을 넘겼다. AS모나코 구단주인 드미트리 리볼로브레프는 2014년 위자료 45억938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받았다. 호주의 미디어 재벌인 루퍼트 머독은 1999년 위자료로 17억 달러를 지급했다. ‘농구 전설’ 마이클 조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팝스타 마돈나, 할리우드 스타 모건 프리먼 등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의 위자료도 천문학적 수준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전 부인 노소영 씨와의 송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혼인 건수는 19만1700건, 이혼 소송은 9만3200건으로 나타났다. 평균 이혼 연령은 남성 49.9세, 여성 46.6세이다. 

옛날에는 이혼을 어떻게 봤을까. 유교의 영향으로 정절을 강조했던 조선 시대에도 이혼은 존재했다. 남편은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는 이유를 들어 처에게 일방적으로 이혼을 요구했다. 처에게 불순구고(不順舅姑·시부모에게 불손함), 무자(無子·아들을 낳지 못함), 음행(淫行·음탕함), 질투(嫉妬), 악질(惡疾·몹쓸 병이 있음), 구설(口舌·비방하는 말을 들음), 도절(盜竊·도둑질을 함) 등 7가지 잘못이 있을 경우 처를 내칠 수 있었다. 다만 삼불거(三不去)라고 해서 쫓겨나면 갈 곳이 없다거나, 부모 3년상을 같이 치렀거나, 가난할 때 시집을 와서 집안을 일으킨 경우는 내쫓지 못했다. 반대로 처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려면 남편이 집을 나가 3년 이상 행방불명됐거나, 남편이 처의 조부모·부모를 때리거나, 형제·자매를 죽이는 등 매우 한정된 경우에만 가능했다. 

양반들은 이혼하려면 왕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평민은 자율적인 합의이혼이 가능했다. 이혼 사유는 대부분 칠거지악이었는데, 사정파의(事情罷議)라는 절차를 거쳤다. 둘이 마주 앉아 이혼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말하고, 서로 승낙하는 일종의 합의이혼을 말한다. 이때 남편이 할급휴서(割給休書)를 주기도 했다. 이혼할 때 상대방에게 주는 깃저고리 조각이다. 이 조각을 수세(이혼 증서)라고 하고 한자로는 휴서(休書)로 표기했다. 할급휴서를 가진 여성들은 재혼할 수 있었다. 

고려 시대는 훗날 조선 시대에 비해 이혼과 재혼이 자유로웠다. 여성의 지위가 남성 부럽지 않게 높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내가 이혼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리(離)’나 ‘절(絶)’로 표현되는 일반적인 의미의 이혼과 ‘출(黜)’이나 ‘기(棄)’로 표현되는 처를 내치는 행위, 그리고 ‘거(去)’로 표현되는 처가 도망하는 것 등 3가지 형태의 이혼이 있었다.

고려의 이혼은 기처(棄妻)가 대부분이었다. 어쨌든 재혼한다는 것은 흔한 일로서 그다지 죄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를 방문해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고려 견문기인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부잣집에서는 아내를 3~4명씩 맞아들이고 조금만 맞지 않으면 곧 이혼한다”거나 “남자와 여자의 혼인에도 경솔히 합치고 헤어지기를 쉽게 한다”고 적혀 있다. 재혼한 부모를 둔 자녀들도 사회 진출에 차별받지 않았다. 과부나 이혼녀라는 이유만으로 격이 떨어지는 재혼을 했던 것도 아니다. 성종·충렬왕·충선왕·충숙왕 등은 이혼한 여자를 왕비로 맞아들이기까지 했다. 

“결혼하는 편이 좋은가, 아니면 하지 않는 편이 좋은가를 묻는다면 나는 어느 편이나 후회할 것이라고 대답하겠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그는 악처에 시달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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