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회현제2시민아파트를 찾다
서울시는 연내 철거 결정…남은 35세대 보상 합의 안돼
시 소유 300세대 관리비 갈등도…“소통 통한 해결 기대”

아파트 1층에서 바라 본 전경
아파트 1층에서 바라 본 전경

마지막 남은 시민아파트이자 최초의 시범아파트인 서울 회현제2시민아파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서울시는 연내 철거를 목표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지하철 4호선 회현역 3번 출구 쪽으로 나와 남산의 오르막길을 13분 정도 굽이굽이 올라가다 중턱에 이르면 만날 수 있다. 한눈에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친절한 금자씨’, ‘무한도전’ 등 영화 예능, 드라마의 촬영지였고 한때는 ‘연예인 아파트’라는 별명까지 얻은 회현제2시민아파트다. 
 

회현시민아파트의 특징인 구름다리
회현시민아파트의 특징인 구름다리

 

9월에 찾은 53세 아파트

늦여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9월 12일 오후, 회현역 3번 출구로 나와 가파른 길을 올라가다 보면 어느덧 아파트가 보인다. 무거운 분위기가 주변의 공기를 압도하는 느낌을 준다. 6층 구름다리를 통해 아파트 내부로 들어가니 분위기가 한층 무거워졌다. 찢어진 현수막과 대자보들이 현재 이 아파트의 상황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파트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중 입주민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곳도 누군가에게는 안식을 주는 보금자리였다. 아파트 내부는 한낮인데도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 어두침침했다. 오래된 가구와 건물 특유의 곰팡이 냄새가 방치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완공 직후 시민아파트(왼쪽), 70년대 중반 시민아파트
완공 직후 시민아파트(왼쪽), 70년대 중반 시민아파트

회현제2시민아파트는 1970년 5월 28일 완공됐다. 이보다 2년 앞서 지어진 회현1은 2003년 철거됐고 그 자리에는 중구회현체육센터가 들어섰다. 회현2는 10층짜리 한 동에 총 352세대다. 전 세대가 52㎡(16평)로 방 두 개, 화장실과 주방 거실이 있는 구조다. 

6층에 구름다리를 설치해 고층에 사는 입주민들이 잘 다닐 수 있도록 했다. 남산 자락에 있다는 특성을 살려 일반 건축물에 구름다리를 적용한 최초의 사례다. 아파트로 흔치 않은 디귿(ㄷ) 자 구조인데다 구름다리까지 갖고 있어 구경거리가 됐다. 이곳에는 승강기가 없다. 당시 승강기는 고급 건물에만 쓰였고 일반 건물에는 거의 쓰지 않았다. 

6층 입구 모습. 시범아파트라 쓰여 있다.
6층 입구 모습. 시범아파트라 쓰여 있다.

아파트에 다다르면 6층 입구를 만나게 된다. 입구는 1층에도 있다. 아파트의 주 출입구 문 위쪽에 ‘회현시범’이라고 적혀 있다. 여기에는 슬픈 역사가 숨겨져 있다. 1970년 1차 시민아파트 건설 사업으로 지어진 와우시민아파트가 붕괴해 34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있었다. 준공 4개월 만이었다. 시민아파트 사업은 당시 정부와 서울시가 야심 차게 시작했지만 이 사고로 인해 한순간에 백지화됐다. 정부와 시의 아파트 공급 사업은 시범아파트 사업으로 대체됐다.

문제는 당시 건설 중이던 시민아파트들이었다.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은 공사를 중지하지는 못하고 ‘종전 아파트들과 다르게 철저히 튼튼하게 지을 것’을 지시한다. 회현2는 와우아파트의 비극을 딛고 더 튼튼하게 지어진 덕에 지금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세월은 이 아파트의 안전등급을 재난위험시설물(D등급)로 내려놓았다. 회현2는 시범아파트로 분류돼야 했지만 이미 붙여진 시민아파트라는 이름도 계속 갖게 됐다. 결국 시민아파트의 마지막이면서 첫 시범아파트로 출범하게 된다.
 

 

시와 입주민들 시각차 커

남산 자락 한자리를 지켜온 회현2는 2000년대 들어 존폐의 기로에 놓인다. 서울시는 ‘2004년 이후 철거’를 밝혔지만 입주민들과 보상금 등 문제로 갈등이 생겨 불발됐다. 2016년 당시 박원순 시장은 리모델링을 거쳐 청년 사업가와 예술가를 위한 주택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 사업도 보상 문제로 난항을 겪었다. 아파트의 토지는 시의 소유이고 건물 지분 일부만 입주민들이 가진 ‘토지임대부’였기 때문이다. 

아파트 내부 모습 대낮인임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둡다.
아파트 내부 모습 대낮인임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둡다.

시는 신도시 아파트의 분양권과 보상금을 주는 조건으로 입주민들과 협상에 나섰지만 입주민 전체와 합의하지는 못했다. 일부 입주민은 합의 후 아파트를 떠났고 합의가 안 된 54세대는 남았다. 오세훈 시장이 취임해 다시 철거 쪽으로 기울었고 결국 준공 53년 만인 2023년 철거로 결정됐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35세대에 대한 보상 문제 등이 합의되지 않아 연내 철거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아파트를 둘러보던 중 이 아파트의 비상대책위원장 겸 관리운영위원장인 박용수 씨를 만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 아파트에서 살아온 토박이다. 박 씨는 시가 관리비를 계속 미납하고 있어 아파트 운영이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시는 시 소유 300세대를 SH(서울주택공사)에 관리를 맡겼다”면서 “관리위원회로서는 남은 세대만 관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입주민들이 시설하자 민원을 제기하면 SH 측에서 수리는 해주지만 미봉책에 불과해 또 수리할 게 생긴다”고 주장했다.

반면 시 관계자는 “지난해 10월과 올해 4월 서울 중구청에서 실태조사와 감사를 시행해 회계와 영수증 증빙, 일반관리비 지출 등의 문제를 발견해 관리위원회 측에 시정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래서 시는 관리비 지급을 중단하고 SH 측에 시 소유분 세대의 관리를 위탁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씨는 “자료가 유실돼 없는데도 감사에서 5년 치 자료를 요구해 대응이 어려웠다”면서 “시가 지적한 문제가 무엇인지 문의해도 답이 없었다”고 맞선다. 시와 입주민들 간의 시각 차이가 크고 분명한 상황이다. 

피해를 보는 쪽은 입주민이다. 박 씨는 “겨울이면 동파 관리가 안 된 시 소유 공실의 배관이 터져 누수가 발생하고 보일러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남은 세대들이 보일러를 사용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또 관리비가 부족해 직원과 경비원을 해고하는 바람에 보안 등 기본 관리가 안 돼 입주민들이 불안해한다는 것. 박 씨는 “시는 최소한의 관리비라도 줘가면서 시정 요구를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 입주민의 나이가 80이 넘어 아파트를 떠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며 “시와 소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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