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호 기자
                            김상호 기자

우리나라 공동주택관리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최고 사령부는 국토교통부 주택건설공급과다. 그런데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가 국토부 담당자 쪽으로 가면서 서서히 사그라지고 만다. 최근 두 개의 사건을 겪으며 공동주택관리 컨트롤타워의 소통능력이 기대 이하라고 느꼈다. 

첫 번째 사건은 아파트의 관리비 통장에 찍는 직인에 관한 것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라면 누구나 ‘소장 직인 필수, 입대의 회장 직인 임의 추가’를 법령의 상식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마음만 먹으면 소장을 패스하고 본인 단독 직인으로 통장을 재발급받을 수 있다. 그러면 관리비 수입금 등 입주민 재산이 위험해질 수 있다. 

소장은 입대의 회장 직인만으로 통장을 새로 만들어준 은행 창구에 대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공동주택법령에 나와 있다”고 하소연을 했다. 은행은 콧방귀도 안 뀐다. 최근 이런 일을 당하고 곤경에 빠진 경기도 모 소장은 기자에게 울분을 터뜨렸다. “공동주택법령은 우리에게만 무섭게 굴지, 알고 보니 ×도 아니네요!.”

기자가 이 건과 관련해 어렵사리 국토부 담당자와 통화했다. 그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 “소장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잘 관리해야 합니다.” 금융 감독 법령과 공동주택관리 법령 간의 빈틈에 대한 대책을 물었다. 그는 “검토해보고 내일 알려주겠다”면서 기자의 이메일 주소까지 확인했지만 답변은 없었다.

두 번째 사건은 경기도 이 모 소장이 국토부에 사업자 선정지침의 적용에 관해 낸 질의 민원이다. 이 소장은 현장에서 흔한 소액 공사 발주 때 복수견적과 계약서 작성 등 지침을 그대로 따르는 게 비현실적이니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그는 100일간 세 차례의 질의 민원을 반복해 넣고도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했다. 

이 소장은 기자에게 “‘동’을 질문했는데 국토부는 계속 ‘서’를 대답했다”며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기 아주 쉬운데도 이를 회피하고 웬만한 사람이면 알고 있는 법조문만 반복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또 “답변을 기다리던 중 전화를 수십 통 걸었고 내 전화번호를 남겼지만 통화 한 번 못 했다”며 “이렇게 소통이 어려우니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고 국회나 언론 등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기자도 국토부에 전화를 해봐서 잘 안다. 전화를 걸면 보통 1분여의 안내 멘트가 나오고 이어 담당자 자리로 연결된다. 그러면 대부분은 자리에 없다는 소리가 나온다. ‘지금은 출장 중이어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란다. 출장 대신 휴가, 회의 등 부재 사유가 바뀌어 흘러나온다. 

심지어 담당자가 자리에 있는 것을 아는데도 부재 멘트가 나올 때도 있다. 어쨌든 통화는 못 한다. 아주 운이 좋아 겨우 연결되면 자기가 담당이 아니라고 다른 번호를 가르쳐주기도 한다. 그러면 민원인이든 기자든 번호 누르기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전화로 답변을 듣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현실이 이런데도 민원에 대한 국토부의 회신 끝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다른 궁금한 사항이 있는 경우에는 국토교통부 주택건설공급과(044-201-33××, ○○○사무관)로 문의해 주시면 친절히 답변드리겠습니다.’ 민원인이 겪는 현실이 거짓인가, 이 문구가 거짓인가. 혹시 원희룡 장관이 사정을 알고 있다면 속 시원한 설명을 듣고 싶다.

앞서 이 소장이 ‘석 달 민원’에서 얻은 대답은 ‘법령 개정 필요 여부를 추후 검토해 보겠다’는 한 마디였다. 이 소장은 “질의 초기에 이 정도라도 대답해줬다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소장이 3개월간 그만한 에너지를 쏟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중앙부처 공무원에게 전국에서 날아드는 민원은 엄청 많을 것이고 그것들을 기한 내 처리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걸려오는 전화를 일일이 응대하다가는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예상된다. 

하지만 중앙부처에 긴급 연락을 할 정도의 현안을 하나라도 더 듣고 잠깐이라도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정책 담당자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일 것이다. 모범 공동주택 단지들의 공통점이 소장과 입대의 회장의 높은 소통 능력인 것처럼 공무원 사회도 소통이 중요하지 않을까. 엄청난 경쟁을 거쳐 선발된 인재들이 모여 있는 중앙부처의 뛰어난 소통 능력을 기대하는 것은 보통 국민의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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