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사무소 찾아와 “가만 안 둔다” 엄포 놓았다는데…

 

김경민 기자
김경민 기자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한 ‘갑질’을 막는 법이 곧 시행 1년이 된다. 지난해 2월 시행된 개정 공동주택관리법은 입주민이나 입주자대표회의가 소장에게 위법한 지시 및 명령, 부당 간섭, 폭행·협박 등을 행사하는 경우 수사기관에 고발할 수 있도록 했다. 2020년 고 이경숙 소장 피살사건 이후 대한주택관리사협회와 전국의 소장들이 만든 작은 ‘방패’였다. 

이후 현장 소장에 대한 갑질은 사라지고 있을까. 직접적인 폭언은 줄었다는 반응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관리사무소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입주민은 여전하다”거나 “늘 노려보면서 트집을 잡으려는 입주민도 많다”는 현장 이야기는 놀라울 정도다. 

경기 파주시 A아파트는 지난달 시로부터 1000만 원의 과태료를 맞았다. 지난해 6월 배수로 덮개 교체 비용 44만여 원을 장기수선충당금이 아닌 수선유지비로 지출했다는 이유에서다. 양측의 말을 들어보면 ‘배수로 덮개가 법령에서 말하는 주요시설인가 아닌가’를 놓고 의견이 갈려 있다. A아파트는 파주시에 이의제기를 준비 중이다. 

소액 공사비에 거액의 과태료 폭탄을 떨군 것도 납득이 안 됐는데, 그 속사정은 더욱 이해가 안 됐다. A아파트의 B소장은 “과태료 부과의 배경은 한 입주민의 민원 때문”이라고 전했다. B소장은 “지난해 8월 입주민 C씨가 단지 내 분수대에 국화 20여 송이를 진열했는데, 미관상 좋지 않아 이를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조심스레 요청했던 게 발단이 됐다”고 전했다.

C씨는 그 말에 관리사무소로 찾아와 “가만히 안 둔다”며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B소장은 “C씨는 이전부터 입대의 회의 때마다 회의록 복사본을 요구했었다”며 “이날 이후 모아놓은 자료를 갖고 시에 민원을 제기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C씨의 민원은 정의보다는 괴롭히기, 보복에 가까워 보인다.

전임 소장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2020년 10월부터 1년여 근무했던 D 전 소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는 말부터 했다. 그는 “C씨가 장기수선계획서를 즉시 안 보여줬다는 이유로 시에 민원을 제기했고, 이로 인해 과태료 200만 원을 부과받았다”고 전했다. 

당시 경기도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은 입주자등이 자료 열람을 요청하는 경우 공개 결정 통보 후 즉시 공개하게 돼 있었다. D 전 소장은 “때마침 회의에서 장기수선계획이 조정됐고 2, 3일 후 수정된 계획서가 도착하자마자 C씨에게 건넸다”면서 “C씨는 상황 설명을 듣고도 ‘즉시 공개를 거부했다’며 시에 민원을 냈고 시는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억울해했다. 

시 관계자는 “이 사안에 행정지도를 내렸더니 민원인이 감사관실로 민원을 재접수해 과태료로 바뀌었다”면서 “이후 관리주체의 이의제기로 50만 원으로 감액했다”고 설명했다. 

D 전 소장이 과태료를 맞은 근거가 됐던 준칙 조항은 현재는 개정됐다. 2021년 12월에 개정된 준칙은 자료 열람 신청 시 ‘5일 이내’에 공개를 결정해 신청인에게 통보 후 즉시 공개하도록 했다. C씨가 활용한 ‘즉시 공개’라는 모호한 문구를 구체화한 셈이다.

D 전 소장도 똑같이 ‘과태료 유도탄’을 맞은 B소장 사연에 안타까워했다. 그는 “당시 소송까지 가려다 참았다”며 “관리사무소에 상습적으로 과태료를 부과하려는 입주민에게는 관리주체가 승소할 경우 소송비용을 청구할 수 있게 해야 다시는 안 그럴 것”이라고 분개했다. 이선미 대주관 협회장의 지적대로 지자체는 중대한 법률 위반이 아닌 경우 시정명령에 그치고 ‘억지성 민원’을 제기한 입주민을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주택관리사들은 입버릇처럼 “과태료도 무섭고, 일부 입주민도 무섭다”고 말한다. 이들은 “입주민이 선량한 관리자의 심경을 때로는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바란다. 관리주체의 투명한 관리를 위해서라면 몰라도, 일부 입주민이 기분이 상했다는 등의 이유로 시를 통해 과태료를 때리는 교묘한 갑질에 나선다면 함께 막아야 할 것이다. 관리종사자들이 이런 횡포에서 벗어나야 입주민을 위한 업무에 매진할 수 있다.

‘억울한 과태료’ 제보 바랍니다 

한국아파트신문이 ‘공동주택 관리를 망가뜨리는 과태료의 현실’과 관련해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여러분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업무 수행 중 △지자체로부터 억울하게 과태료를 부과받은 사례 △과태료 부과 후 이의제기해 시정한 사례 △시정되지 않아 소송까지 간 사례 등 과태료와 관련된 생생한 경험을 관련 증거 자료를 첨부해 2월 말까지 이메일(hapt@kakao.com)로 제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필요한 경우 익명 처리 요청이 가능합니다. 사례를 분석해 과태료의 문제점을 심층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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