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충전시설 의무화’ 현장 진단 ⓛ입주민간 충돌
“충전구역 표시를” “왜 벌써 설치하나” 전기・일반차주 맞서
“행정기관이 명확한 기준 갖고 갈등 정리 나서줘야” 목소리

전기차 충전시설이 설치된 주차장 바닥에 전용구역임을 알리는 표시가 돼 있다.
전기차 충전시설이 설치된 주차장 바닥에 전용구역임을 알리는 표시가 돼 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마감이 2년 남은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 문제로 유례없이 일찌감치 뜨거운 상태다. 미리 설치해놓으니 전기차주와 일반차주의 주차공간 다툼에 이어 과태료를 둘러싼 갈등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 당국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관리사무소가 부담을 떠안게 됐다.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 의무화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법에 따라 100세대 이상 기축 공동주택은 2025년 1월 28일까지 전용주차구역에 전기차 충전시설을 전체 주차대수의 2% 이상 설치해야 한다.

또 지난해 8월부터 충전시설의 충전구역 및 전용주차구역에 일반차량이 주차하는 등 충전방해행위를 하는 자에게 과태료가 부과되고 있다. 

 

아파트의 민원과 과태료 갈등

800여 세대 규모의 경기도 A아파트는 지난해 지상주차장과 지하주차장에 전기차 충전시설 17대를 설치했다가 입주민들의 민원에 시달렸다. 주차면 바닥에 ‘전기차 충전구역’을 표시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일반차주 입주민은 “주차장도 부족한데 왜 벌써 충전시설을 설치해 일반 차주가 과태료를 물게 만드느냐”고 소리를 높였다. 반면에 전기차주 입주민은 “충전시설에 차를 주차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인근 B아파트 역시 미리 충전시설을 설치했다가 “주차갈등을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는 입주민들의 민원이 폭증했다.

A아파트 C관리사무소장은 “어차피 2025년 이전에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해야 하고 현재 11대의 전기차가 등록돼 있어 조금 일찍 설치했더니 이런 민원이 발생해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환경부와 지자체 등 행정기관에 해답을 구했으나 “아파트에서 알아서 판단하라”는 답변뿐이었다. 

결국 A아파트는 민원 해소를 위한 타협안을 내놓았다. 전기차주를 위해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하되 일반차주도 이곳에 주차가 가능하도록 바닥에 충전구역 표시를 하지 않기로 한 것. 그렇다고 민원이 사라진 건 아니다. 전기차주로부터 “전기차만 주차하도록 충전구역 표시를 그려달라”는 요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환경부의 보조금을 받아 충전시설을 설치하면 환경부 지침에 따라 반드시 전기차 충전구역임을 표시해야 한다. 업체의 보조금을 받아 설치하면 제도시행일 전까지는 충전구역 표시 의무가 없다. 일부 아파트는 일반차량의 과태료 갈등을 피하기 위해 충전구역 표시 페인팅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공사 계약을 하기도 한다고 업계 관계자가 전했다.

아파트들이 마감을 2년 앞두고 충전시설을 미리 설치한 것은 환경부 또는 지자체의 보조금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확보하려는 의도다. 환경부가 2024년까지 지급하는 보조금은 11㎾ 이상 완속충전기를 기준으로 2021년 1기당 200만 원, 2022년 180만 원, 2023년 160만 원으로 해마다 줄었다. 과금형콘텐츠 보조금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이유로는 업체의 충전시설 설치 계약이 몰릴 것을 우려해서다. 

충전방해행위를 단속하는 지자체도 난감해한다. 인구 50만 명 규모의 모 시청 관계자는 “제도시행일 전이어서 아파트의 충전시설 운영에 대해 지자체가 직접 개입하기 어렵다”면서도 “입주민의 민원이 빗발쳐 애로가 크다”고 말한다. 그는 “2022년 충전방해행위 신고를 1000여 건 접수해 증거가 확인되는 500여 건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했다”면서 “충전시설에 대해 전기차주와 일반차주 간의 양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충전시설 설치를 준비 중인 D아파트의 소장은 “정부와 지자체가 명확한 기준과 일정 계획을 갖고 충전시설 의무화를 추진해야 한다”면서 “특히 갈등과 민원을 정리할 수 있게 책임 있는 회신을 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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