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 경비원 인권증진 심층기획 (1) 갑질 실태
“용역회사 바꿨다고 전원해고… 인사 안한다고 교체”
“명품 아파트는 비싼 곳 아니라 양심・인간미 있는 곳”
“경비원 인권은 고용계약 안정 없이 생각할 수 없어”

공동주택의 경비원은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걸까. 10만 명에 달하는 아파트 경비종사자의 평균 연령은 60대 후반. 인생 후반부에 여전히 한 가정의 경제를 끌고 가는 어르신들이다. 이들에 대한 갑질 문제는 하루 이틀이 아니었고 아직도 곳곳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3, 6개월짜리 단기 근로계약을 강요당하는 고용 현장에서 갑질의 양태, 휴게실 환경, 근무시간과 보수 등을 시리즈로 취재, 보도한다. 또 경비업법을 반영해 경비업무를 제한한 결과 아파트 관리비가 오를 것을 우려한 나머지 경비원을 해고하는 등 부작용을 낳는 현장도 들여다본다. 

부산 모 아파트 경비·미화원들이 갑질 부당행위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
부산 모 아파트 경비·미화원들이 갑질 부당행위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갑질은 그 양상이 다양하고 끊이질 않는다. 지난 여름 술 취한 입주민이 승강기에서 나와 다짜고짜 경비원에게 발길질하는 장면이 공개돼 많은 사람의 공분을 샀다. 그 이후 폭행자와 해당 경비원 및 입주민들은 어떻게 됐을까. 

최근 만난 당사자 A 경비원(69)은 “내가 가해자를 용서한 덕인지 현재 입주민들과 관계가 더 좋아졌다”며 “경비업무에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그는 “갑질은 창피한 일이란 걸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올봄 부산의 한 아파트 경비미화원 20여 명이 아파트 입구에서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의 갑질과 해고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B 경비원(66)은 “회장의 갑질에 대한 규탄은 허공의 외침으로 끝났다”며 “3개월짜리 계약서로 자기 마음대로 부려먹다 용역회사를 바꿨다고 전원 해고하다니 말이 되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사건화되지 않은 갑질은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다. 각 지역 아파트 경비원의 진솔한 경험을 들어봤다.

▷부산 C 경비원(77): “입주민 중에는 경비원이 인사를 잘 하지 않는다며 그 경비원을 미워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 꼭 트집을 잡아 관리실에 이야기해 교체를 시킨다.” 

▷부산 D 경비원: “동대표가 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 갑자기 사람이 달라지고 권력자, 왕처럼 행동한다. 경비원들은 입주자 대표들 차량 번호를 다 외워 그들 차가 들어오면 차단기를 즉각 올린다. 동대표가 우리 목숨줄을 쥐고 있기 때문에….” 

▷대전 E 경비원: “동대표의 교묘한 갑질로 너무 힘든 상황이어서 손해배상 소송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동대표가 나에게만 트집을 잡아 스트레스가 심하다.”

▷경기 F 경비원: “때때로 심한 갑질에 항의라도 하고 싶지만 3개월 계약 만기가 곧 다가와 참고 넘어가기 일쑤다.”

▷서울 G 경비원: “우리는 아파트에서 24시간 머물고 낮에는 낮대로, 밤이든 새벽이든 가리지 않고 일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주된 경비업무 외에도 처리할 일이 생각보다 많다. 일주일에 한두 번의 분리수거와 음식물쓰레기통 처리, 낙엽과 눈 치우기, 교통정리와 주차관리로 하루가 훌쩍 간다.”

경비원에게 폭언, 폭행, 부당해고 등 부당한 대우는 얼마나 발생하고 있을까. 

2019년 서울노동권익센터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 경비노동자 482명 중 19%인 92명이 부당대우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2021년 부산노동권익센터의 부산지역 아파트 경비·청소노동자 실태조사에서는 응답자 615명 중 38%인 232명이 입주민으로부터 폭언 등 부당한 경험을 겪었던 것으로 보고됐다. 

본지가 최근 서울의 아파트 경비원 20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11%인 22명이 부당대우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조사됐다. 이때 가해자는 일반 입주민이 13명(59%)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동대표가 3명(14%)이었고 용역회사, 관리사무소장, 관리직원이 2명(9%)씩이었다. 

최근 경비원 대량 해고가 결정된 한 아파트의 경비원은 “부당해고 등 경비원에 불리한 일이 생길 때 관리사무소가 입대의 편을 드는 것 같다”며 “입대의의 지시를 받는 소장의 입장이 이해는 되지만 같은 종사자로서 배신감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경비원이 받는 부당대우에 대해 공동주택 관련 전문가 소기재 박사는 “갑질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며 “아파트 값이 비싸고 부자가 사는 곳이 명품아파트가 아니고 양심과 인간미가 있는 곳이 명품아파트”라고 말했다.

전필녀 부산노동권익센터 정책연구원은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갑질의 기저에는 단기계약이라는 단단한 목줄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경비원 등 아파트 관리종사자를 쉽게 다루기 위해 단기계약이 전국으로 번졌다”며 “이런 잘못된 관행을 끊어낼 방안에 대해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고용이 인권”이라며 “경비원 인권은 안정된 고용계약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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