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민 기자
김경민 기자

“퇴직하면 뭐 먹고 살아야 하나.” 많은 직장인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요즘은 젊은 층도 이런 걱정을 한다고 한다. 평균수명이 늘고 고령인구가 증가하는 한국의 상황이다. 

고령화 시대, 고령인구는 정년 후에도 일하고 싶어 할까. 통계를 뒤져봤다. 65~79세 고령인구의 55%는 일하기를 원하고 있다. 

지난해 에세이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를 발간한 아파트 경비원 최훈(필명‧67) 씨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게 된 이유를 이렇게 전했다. “한때 잘나가던 친구가 ‘나 다음 달부터 주유소에서 일하기로 했다’고 한마디했다. 나는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젊은 시절 대기업에 청춘을 바쳐도 정년퇴직 후 새로운 일자리 앞에서 나이의 벽에 부딪히기는 매한가지다. 오죽하면 ‘서울대 나와도 결국 치킨집 사장’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다. 

일자리를 갈망하는 이들이 자주 찾는 곳이 중장년일자리박람회다. 6월 경기 안양의 박람회 때 기자가 만난 60대의 구직희망자들도 “일반 회사는 구직자의 나이부터 보고 이력서도 안 읽는다”며 취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새 일자리를 향한 중장년층의 청사진이 흑백사진으로 바뀌지는 말아야겠다. 본보 기자들은 약 5개월의 기획취재 후 지난 8~9월 두 달에 걸쳐 ‘아파트 30만 일자리, 중장년층 찾는다’ 시리즈를 보도했다. 아파트 30만 일자리에는 관리사무소장을 비롯해 전기기사, 경리, 경비원, 미화원 등이 포함된다. 

퇴직하고도 할 일 생겨 기뻐

기자가 만난 다수의 관리종사자는 “정년퇴직 후에도 할 일이 있고 출근할 곳이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기자는 한편으로 의구심이 들었다. 혹시 기자가 앞에 있어서 좋은 이야기만 들려주는 것은 아닐까? 혹은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만 만나게 된 건 아닐까?

본지는 더욱 많은 주택관리사들의 속내를 가감 없이 들어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분석 결과에는 빛과 그림자가 뚜렷이 나타났다. 

설문조사에 응한 전국 413명의 주택관리사는 직업 만족도를 높인 주요인으로 ‘정년이 없다(50%)’를 꼽았다. 현장에서 직접 만나서 들은 이야기와 궤를 같이했다.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들은 악성 민원(37%), 고용 불안정(34%) 등을 이유로 들었다. 

정년이 없어 좋지만, 고용은 불안정하니 나쁘다? 상반되는 두 의미가 합쳐지면서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실을 만들어낸다. 

그런 현실은 정부 조사에서도 드러났다.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27일 밝힌 공동주택 관리비리 조기경보시스템 운영 결과였다. 9월 기준으로 최근 2년 내 소장이 3회 이상 변경된 단지가 전국에 269곳이나 있었다. 전국 의무관리 1만7918개 단지 중 1.5%여서 적어 보이지만 단지 수로는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초단기계약 문제 해결 시급

최근 3개월짜리 초단기 근로계약서가 나돌면서 주택관리사 사이에도 고용불안정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정년의 부담은 덜었지만 한 단지에서 오래 근무하기는 어려워진 셈이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22년째 근무 중인 조경순 소장은 “초단기 계약은 일할 의욕도 안 생길뿐더러 단지 특성을 파악하기에도 힘들다”며 “최소한 3년은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3개월 초단기 계약서에 도장을 찍도록 내몰린 소장들이 현실에는 더 많다. 이들 대부분이 새 직장을 구하기 위해 참고 만다고 한다. 지금처럼 나쁜 관행에 소장 개인이 대응하도록 방치하면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 뻔하다. 

다행히 법적 다툼으로 가면 구제를 받기도 한다. 위탁관리업체와 3개월 초단기 계약을 반복하던 소장의 해고는 부당하다는 판정도 나온 바 있다.  이 판정을 따내기 위해 소장은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냈을까.

기자가 만난 중장년 관리종사자 중 많은 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아파트에 중장년의 좋은 일자리가 많이 있다’고 자신 있게 소개하려면 고용불안정 문제부터 시급히 정리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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