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담장 넘어 도망친 도시생활자’ (한은화 지음/동아시아)
‘아파트 담장 넘어 도망친 도시생활자’ (한은화 지음/동아시아)

대한민국에서 집은 곧 아파트로 통한다. 살기 편한 것은 물론 든든한 자산이기 때문에 가격에 일희일비한다. 한옥은 갈수록 뒷방 늙은이처럼 외면받는다. 여행지에서 하룻밤이나 아이들과 한옥 체험을 할 경우가 아니면 묵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집을 지어 본 사람들, 특히 한옥을 신축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내가 왜 시작했을까’ 후회하고 ‘최소 10년은 더 늙었다’고 한탄한다. 그만큼 미처 생각하지 못한 어려움이 숱하게 닥치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울 서촌에서 겁도 없이 이 무모한 도전에 나섰다. 연인과 함께 경복궁 서쪽 동네 지붕이 무너져 내린 한옥 한 채를 사면서부터 지옥행 급행열차에 오른다. 

첫 번째 충격은 집 앞 너른 마당과 4m의 폭을 자랑하는 골목길에 있는 집이 알고 보니 맹지(공로에 접한 부분이 없는 토지)였다. 번듯하게 난 도로는 동네에서 오랫동안 관습적으로 쓰고 있는 이른바 현황도로였다. 도로에 건축허가를 내줘서 건물이 들어설 일이 없지만, 문제는 새로운 건축행위다. 건축법상 땅이 길과 연결돼 있어야 건축할 수 있다. 주인의 토지사용승낙서를 받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다. 

오랫동안 고민 끝에 뒷조사를 통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 집 앞 골목길이 1975년 이전부터 이 상태로 있었다면 건축법상 도로로 인정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건축법상 도로가 되면 설령 개인의 땅이더라도 토지사용승낙서를 받지 않아도 된다. 길의 폭이 4m인 것이 단서가 됐다. 옛날 신문기사들을 끈질기게 뒤져 문서로 정리해 구청에 민원을 넣어 건축법상 도로로 인정을 받았다. 지뢰 하나가 성공적으로 제거됐다. 

저자는 사실 처음부터 한옥 신축 생각은 없었다. 무너진 집을 그럭저럭 고쳐 살려고 마음 먹었다가 지하 공간에 꽂혀 생각을 바꿨다. 가장 큰 문제는 공사비용은 늘어나는데도 날려버리는 면적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오래된 동네에서 집을 새로 짓지 않고 외형을 유지하면서 수선만 하며 사는 이유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특히 한옥은 땅을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다. 아무리 반듯한 땅에 지었더라도 대지 면적 30평을 기준으로 집은 약 15평밖에 안 된다. 

최종적으로 11.5평의 한옥을 지었다. 건축가와 치열하게 토론하며 지하에 옷방을 두고, 1층 안방은 옷장도 화장대도 없이 잠만 자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주방 한쪽에 뒀던 세탁기와 건조기도 지하에 두고, 대신 싱크대를 더 길게 뒀다. 한옥 공간을 더 넓게 쓰기 위해 과감히 비우기로 한 것이다. 일상에서 채워야 할 것들은 지하로 옮겼다. 

아파트 중심으로 구축된 도시의 삶은 모두가 고달프다. 너무 쉽게 비교하고 평가하고 좌절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삶에서 누군가는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그동안 한옥을 지으며 몸 고생 마음고생 경험을 글로 풀어냈다. 

“아파트가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삶터로 자리매김하는 동안 아파트 밖 동네는 방치됐다. 어렵게 내 집을 새로 지을 수 있어도 낙후한 동네 인프라를 바꾸긴 힘들었다. 단지 안의 안락한 생활은 집단으로 뭉친 개인들이 투자한 결과였다. 단지 밖의 험난한 삶은 집단이 되지 못한 개인들이 발버둥 치다 포기한 결과였다.”

완전 만족은 못 하겠지만 아파트 밖 한적한 한옥 동네의 현재 생활은 그래도 좋단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은 기본이고 앞마당 나무 키우기와 뒷마당 텃밭 가꾸기를 즐기고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한옥을 통해 일찍 삶의 여유를 찾은 용기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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