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락의 ‘산티아고, 나를 비우는 길’ <7일차>
로스 아르고스 → 로그로뇨 (28km)
오늘도 아침 일찍 출발해 나바라(Navarra)주의 경계를 넘어 리오하(Rioja)주로 넘어왔다. 어제처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보리, 밀, 포도, 올리브가 자라고 있는 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일요일이라 식당 문을 연 곳이 있을까 염려했지만, 순례자들이 먹고 쉴 바(bar)는 열려있어 커피와 샌드위치로 아침을 해결했다. 벌써 기온이 많이 올라 걷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다행히 넓은 벌판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열기를 식혀 줬다.
목적지 로그로뇨(Logroño)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광장에서는 일요일이라 그런지 축제 분위기였다. 음악도 흘러나왔다. 리오하 지방은 포도주로 유명하다. 양송이 올리브 볶음과 포도주를 싼값에 권해 먹어봤는데 아주 훌륭했다.
오늘은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른 지 7일째 되는 날이다. 이곳에서도 생활 리듬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립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는 저녁 10시 전후에 문을 닫고 아침 8시 전에 순례자들을 내보낸다. 우선 이런 알베르게의 규칙에 맞추려고 했다. 걷느라 쌓인 피로에 일찍 잠이 들고 오전 5시 전후로 눈이 떠진다. 일주일간 지켜보니 한국 사람들이 가장 부지런해 가장 먼저 숙소를 나선다.
출발 준비를 끝내면 전날 준비해놓은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한다. 아니면 출발 후 적당한 카페를 찾아 아침 식사를 한다. 카페 라테와 스페인식 계란말이인 또르티야 파타타, 샌드위치, 크루아상 등을 같이 먹는다. 5유로(약 6500원)면 충분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서쪽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라 해를 등지고 걷는다. 보통 오전 6시쯤 출발해 오후 12시 30분에서 1시 30분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정을 잡으면 해를 바라보지 않고 걸어도 된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순례자임을 확인하고 잠자리를 배정받은 뒤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간다.
식당에는 간단해 보여도 영양가가 높고 값싼 순례자 메뉴가 준비돼 있다. 한 끼를 해결하면 숙소로 돌아와 하루 쌓인 피로와 지친 근육을 풀기 위해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한다.
손빨래를 하는 곳도 있지만 세탁기에 익숙한 우리는 빨래를 모아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날이 좋으면 숙소 뒤편에 있는 빨랫줄에 빨래를 널고 흐린 날에는 건조기를 사용해 말리기도 한다.
기본적인 일과를 마친 후에는 간단히 장을 본다. 숙소에 마련돼 있는 주방에서 저녁을 만들어 먹는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에는 자기 전까지 자유시간이다.
나는 자유시간이면 마을에 있는 성당으로 가 저녁 미사에 참석하려 한다. 어제 머물렀던 로스 아르고스의 ‘산타 마리아’ 성당은 마을 규모에 비해 크고 화려했다. 이곳은 성모 성당으로 아기 예수와 함께 있는 성모님을 중앙에 모셨다.
미사 후에는 신부님이 순례자들을 불러 강복을 주고는 각 나라의 언어로 된 기도문을 나눠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글로 된 기도문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있다고 했다. 같이 간 일행들도 받았다.
이제 나도 정식으로 순례자가 되는 건가 싶다. 부엔 까미노!
관련기사
- 1일차 - 산티아고 순례길의 작은 기적들
- 2일차 - 버릴 건 뭐고, 지킬 건 뭘까
- 3일차 – 밤새 성모님이 다녀가셨나?
- 4일차 - 복수가 용서를 대신할 수 없다
- 5일차 - “한국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나요”
- 6일차 – 인상파 화가의 풍경화 속을 걷는 듯
- 8일차 - 나의 작은 아픔…타인의 더 큰 아픔
- 9일차 - 같은 길을 걷는 우린 모두 친구
- 10일차 - 태양의 나라, 누가 바람을 보았나
- 11일차 - 하루 숙식비용 얼마나 드나 보니⋯
- 12일차 – 젊은이들이 맘껏 일하는 세상 꿈꾸며
- 13일차 – 만남과 이별, 오늘따라 부모님 생각이…
- 14일차 –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