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 외 업무 허용 이후 자치관리로 전환하려거나 주차요원 채용 고민도

공동주택관리법 개정 시행령이 21일 시행에 들어갔다. 공동주택 경비원에게 경비업무 외에 시킬 수 있는 일과 시킬 수 없는 일을 명확히 하는 내용이다. 허용 업무에는 잡초 제거, 낙엽 청소, 제설, 재활용품 분리배출 정리·감시, 위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차량 이동, 안내물 게시 및 비치, 택배·우편물 보관 등이 포함됐다. 대리주차, 개별 세대 택배물 배달, 각 가정의 대형 폐기물 수거·운반 등은 경비원에게 요구해서는 안 될 업무로 적시했다.

이런 변화에 일부 아파트는 경비원을 관리원으로 변경하거나 위탁관리를 자치관리로 바꿔 경비원을 직접 고용해 경비업법 적용을 받지 않도록 하는 식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주차장 사정 때문에 대리주차를 꼭 해야 하기 때문. 저마다 상황이 다른 공동주택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봤다.

 

▲경비원=개정 시행령은 경비원의 근로여건을 개선하고 경비원에 대한 ‘갑질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목적에서 마련됐다. 공동주택 관리현장에서는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 송파구 모 아파트의 A 경비원은 “원래 경비원 업무가 아니었던 분리수거, 청소보조, 주차관리 등이 합법적으로 추가된 셈”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 아파트 B 경비원은 “그동안 단지 내 잡다한 일을 보조하거나 도맡아 하면서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는데 이제 그런 업무들이 법적으로 인정돼 좋지 않다”며 “분리수거를 하고 받던 월 3만~4만원의 수당도 못 받게 된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경기 시흥 모 아파트 C 경비원은 “고용안정, 처우개선이라니 반갑지만 그간 암암리에 하던 일들이어서 큰 변화는 없을 것 같고, 규정을 위반해도 실질적으로 처벌이 이뤄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기 광명에서 근무하는 70대의 D 경비원은 “일부 입주민은 경비원이 하는 일이 줄어들면 경비원 수를 줄여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며 “현실적으로 입주민들이 요구하면 웬만한 일은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경기 광명의 아파트 E 경비원은 “일부 경비원을 관리원으로 명칭을 바꿔 경비원이 하지 못하는 일을 시키지 않겠냐”며 “결국 업무부담도 늘고 해고위험도 높아진 것 같아 씁쓸하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경비원 단체=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관계자는 “경비원 업무범위 설정은 경비업법 위반 소지를 없앤 것일 뿐이고 경비원의 업무는 늘어나고 법률적 보호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근로기준법과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업무범위에 맞게 고용노동부가 감시·단속직 승인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공동사업단 관계자는 “새 아파트의 차량 출입 체크가 경비원의 주업무가 돼 업무량이 많고, 분리수거, 택배관리, 주차관리 등이 주 업무처럼 돼버려 실제로는 감시적 근로자와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한국경비협회 측은 “이번에 경비노동자의 업무범위가 과도하게 확대됐다”며 “수목, 정원조성을 제한업무로 예시하고 부분적 가지치기, 수목 식재업무를 허용범위로 둔 것은 사실상 조경업무를 허용하겠다는 뜻이고, 도색 또는 제초작업 시 전문 인력을 보조하는 것 또한 사실상 업무의 일체를 허용하겠다는 의미여서 현장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입주민, 입대의=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F 감사는 “우리 아파트는 주차면적이 좁아 2중, 3중 주차, 경사면 주차가 흔해 경비원이 대리주차를 해왔는데 이것이 전면 금지돼 입주민들의 불만이 나온다”고 전했다. 그는 “입주민이 직접 이동주차를 하라고 안내하고 있지만 혼잡 상황 때 어떻게 할지 입대의가 고민 중”이라며 “10명의 경비원 중 2명을 ‘관리원’으로 명칭을 바꿔 주차관리 업무를 맡기거나 경비원을 줄이고 주차관리원을 채용하자는 의견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F 감사는 “국토부 등 주무부처가 세밀한 유권해석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의 모 아파트 입대의 H 회장도 “이것저것 복잡해져 위탁관리를 자치관리로 전환해 경비원을 직접 고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관리사무소장=서울 은평구 뉴타운 소재 모 아파트 I 소장은 “조경면적이 어마어마해 제초작업이나 가지치기, 간단한 수목식재 등 조경관리를 관리직원과 경비원들의 도움으로 해왔는데 이제는 부분적 가지치기는 되고 수목식재는 안 된다는데 그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며 “전문 업체에 맡기거나 해당 업무를 맡을 직원을 구하면 관리비가 오를 테니 걱정이다”고 말했다.

자치관리 중인 서울 용산의 한 아파트 J 소장은 “과거 경비원이 대리주차 중 사고를 내 소송에 시달린 일이 있다”면서 “새 규정 시행을 입주민들에게 알리고 협조를 구하니 적극 협조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부산 해운대의 한 아파트 K 소장은 “보안업체를 고용해 경비를 맡기고 있고 공용부분의 청소나 미화, 관리비 고지서 분배 등은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하고 있어 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김경헌 국토부 주택건설공급과장은 “이번 개정 시행령은 공동주택의 여러 주체가 함께 논의하고 한발씩 양보해 결정된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면서 “경비원의 업무범위 축소에 따른 고용불안 우려도 나오지만 상생문화가 자리 잡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경비원을 해고하지 않고 관리원으로 변경해 고용을 유지하면서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업무를 한다면 경비원들은 본연의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아파트에서도 논란이 되는 부분을 해결할 수 있어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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