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점 못 찾은 입대의 ‘위탁사 계약 해지’ 밀어붙여
특별기획|‘복합건물’의 관리 난맥상 ⑤

 

서울 마포구의 한 복합단지 관리직원들이 결국 길거리로 쫓겨났다. 아파트 662세대, 오피스텔 626세대, 아파트 측 상가 56실, 오피스텔 측 상가 6실 등 1,350개의 개별 소유공간으로 구획된 이 단지의 분란은 꽤 긴 역사를 갖고 있었다. 이전 주민대표기구와 이전 관리주체 간 분쟁이 길게 이어졌다.

 시기마다 분쟁의 내용과 원인은 달랐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용할 관계법규가 명확하지 않아 소송까지 가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별도 구획이 서로 등을 대고 붙어있거나, 다른 용도의 공간이 아래위로 연결된 건물인 탓이었다. 공동주택관리법을 적용할지, 집합건물법을 적용할지를 놓고 서로 다른 입장이 충돌했다. 모호한 법체계 때문에 관할구청마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민원에 휘둘려 혼란이 가중됐다.

지난 8월 이 단지의 입주자대표회의가 기존의 위탁관리업체를 해지하고 다른 업체와 계약했다. 새 업체가 인력을 동원해 관리사무소를 장악했다. 사무실을 비롯한 주요 부분의 잠금장치도 모두 바뀌었다. 휴일 새벽에 벌어진 일이었다. 전 업체 직원들은 로비로 물러나 업무를 보며, 집단 대치상황을 이어갔다.

일부 입주민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나서면서 입주민 간 싸움으로 확대되는 양상도 나타났다. 비대위에 찬성 입장인 한 입주민은 “힘들게 일하는 직원들 급여를 주지 않는 건 너무 심한 처사”라며 “우리 아파트가 갑질을 일삼는 곳으로 외부에 알려질까봐 부끄럽다”고 말했다.

10월에 다시 찾은 이 복합단지는 겉으론 평온한 모습이었다. 로비에서 일하던 전 위탁사 직원들은 모두 떠난 상태였다. 비대위도 별 움직임이 없는 듯했다. 

새로 부임한 관리사무소장은 “밀린 용역비를 모두 지불하면서 체불임금 문제가 해소됐다”고 전했다. 그는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된 전 직원들의 상심과 불만이 크겠지만, 인수인계도 받지 못하고 업무를 시작한 우리도 매우 힘든 상태”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전임 관리사무소장은 “우리 직원들이 어쩔 수 없이 물러나긴 했지만 밀린 임금 두 달 치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위탁관리 기간이 20개월 남은 상황에서 부당하게 계약 해지를 당한 것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며 “단 몇 명의 고용승계도 없이 30명이 넘는 직원을 모두 내보낸 것은 감정적인 대응”이라고 유감을 나타냈다.

지난해 10월, 이 단지 지하상가에서 큰불이 났다. 인근 지하철역까지 연기가 유입돼 전철이 무정차 통과할 정도로 번진 화재는 3시간 만에 진화됐다. 비교적 빨리 불을 껐지만 피해는 아직 봉합되지 않고 있다. 사고 1년이 지난 지금도 지하 1층에선 매캐한 냄새가 빠지지 않고 있으며, 소음과 먼지가 자욱한 가운데 공사가 진행 중이다. 업체 선정과 복구공사가 지연되면서 상인들은 영업재개일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법적인 권한과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조차 불명확한 상황이다. 모든 쟁점을 소송에 의지하며 승자도 패자도 가리기 힘든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복합건물 문제 곪지 않게 입법논의 서둘러야”

모든 복합건물이 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니었다. 위 단지와 바로 이웃한 곳에 비슷한 규모의 복합건물이 있지만, 이곳은 전혀 다른 분위기다. 최근 위탁관리에서 자치관리로 전환한 이곳은 전체 직원 40명을 모두 고용승계했다. 그만큼 입주민과 관리주체의 소통이 원활하고 관리만족도가 높다는 걸 방증한다. 

이 단지 관리사무소장은 “공동주택관리법이든 집합건물법이든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고, 중첩되는 부분이나, 법이 규정하지 못한 부분은 관리규약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다툼이 생기면 상대방 주장을 문제 삼게 되는데 이때 복잡한 법체계가 발목을 잡는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이선미  대한주택관리사협회장은 “복합건물의 상당수가 법적분쟁을 겪고 있는 가운데, 어떤 곳은 법에 의존하지 않고도 순조롭게 관리해 나간다는 사실  자체가 관련법 체계가 허약한 현실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주민대표와 관리주체가 어떤 인물인가에 따라 관리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의 법과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증거”라고 지적한다.

지난 2016년 공동주택관리법 제정·시행과 함께 아파트 관리 분야가 정립되는 모습을 갖춰나가자, 이 법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오피스텔과 소규모 아파트에서 문제가 쏟아져 나왔다. 특히 오피스텔의 관리비가 아파트보다 턱없이 비싸고, 공사와 용역계약을 소수의 입주자가 독점하며 비리가 드러나 사회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현장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지자체들의 노력은 의미가 있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각각 ‘집합건물관리지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지원단은 집합건물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관리인, 구분소유자 또는 점유자를 대상으로 변호사, 주택관리사, 건축사, 회계사, 노무사 등 전문가들이 현장을 찾아가 자문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자체에서는 ‘권한이 부족한 현실’의 문제를 호소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행정기관이 조사·감독 권한을 갖고 법 위반 등 중대한 문제가 있는 곳에 제재를 가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건물관리 법률전문가인 한영화 변호사(한영화 법률사무소)는 “집합건물은 종류, 형태 및 규모가 매우 다양하므로 개별 집합건물의 실정을 고려해 실제 적용에 중요한 사항은 규약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집합건물관리와 공동주택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선 무엇보다 집합물건법과 공동주택관리법의 적용을 받는 관리 종사자에 대해 인치(人治)가 아닌 법치(法治)가 바로 설 수 있는 상생의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건물관리 전문업체인 율산개발 김경렬 경영지원총괄사장은 “설계부터 치밀한 동선분할이 중요하다”며 “주거부분과 상가출입자의 동선이 겹치지 않으면 갈등의 상당부분을 원천봉쇄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동일건물이란 점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공통적으로 겹치는 부분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3층까지는 상가고 4층부터 아파트인 주상복합건물의 도색공사를 할 경우 상가가 장기수선충당금이 없어 비용을 분담하지 못 한다고 하면 현행 법체계에서는 집건법에 따라 상가와 아파트의 전체 구분소유자인 관리단 집회를 개최해야 한다. 여기서 건물 전체를 도색하기로 의결해야 하고, 아파트 측이 도색비용을 장충금으로 우선 지출한 후에 상가 측에 비용분담금 청구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합법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니 현장에선 어려움이 크다. 복합건물 공용부분에 대한 법체계의 일원화가 시급하다는 것을 웅변하는 사례다.

그렇다면 복합건물의 모든 구분소유자들에게 이해관계가 있는 공용부분이나 대지는 어떻게 관리돼야 할까. 집합건물법 전문가인 김영두 교수(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주상복합아파트는 집합건물이기 때문에 전체 건물은 원칙적으로 집합건물 관리단이 관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상복합아파트의 옥상은 입대의나 상가관리단이 아닌 전체 구분소유자로 구성된 집합건물 관리단이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한마디로 “입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라도 복합건물 관리를 체계화하기 위한 입법논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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