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의 의결 없는 감사보고서에 ‘직인’ 아닌 ‘확인필’ 날인됐어도
동대표 제거할 권한 없어 항소심도 “벌금형 집행유예”

경남 창원시 모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감사가 경비원들을 통해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부착해놓은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실태 감사보고서’(이하 감사보고서)를 동대표 A씨가 임의로 떼어냈다가 형사 처분을 면치 못하게 됐다. 

창원지방법원 제3-3형사부(재판장 김기풍 부장판사)는 재물손괴죄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100만원에 1년간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A씨의 항소를 기각했고, 이는 그대로 확정됐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를 비롯한 동대표 3명은 2017년 11월경 엘리베이터 게시판에서 감사보고서를 떼어내 입주민들이 볼 수 없도록 하는 등 감사보고서의 효용을 해한 혐의를 받았다. A씨를 제외한 동대표 2명은 1심에서 벌금 5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을 각각 선고받고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항소를 제기한 A씨는 “문제의 감사보고서는 감사가 입대의 승인 없이 자체적으로 작성한 것에 불과하고, 입대의 의결도 받지 못해 감사보고서로서의 효력이 없어 손괴죄의 객체인 ‘문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A씨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먼저 “감사가 관리사무소에서 감사보고서에 ‘확인필’ 도장을 받아 엘리베이터에 게시한 것은 공동주택관리법령에 따라 입대의 사무를 처리하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으로부터 게시를 승낙받아 한 것”이라며 “감사의 행위가 위법하다거나 관리규약에 반한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인정했다. 

구 공동주택관리법 시행규칙에서는 감사는 회계 관계 업무와 관리업무 전반에 대해 관리주체의 업무를 감사하며, 감사보고서를 작성해 입대의와 관리주체에게 제출하고 관리사무소나 게시판에 공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동법 시행령에서는 회계감사보고서만 입대의 의결사항으로 정하고, 이외의 감사보고서는 입대의 의결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재판부는 “아파트 관리규약상 게시판에 문서를 게시할 때 반드시 소장의 직인이 날인돼야 한다거나 ‘확인필’ 도장만으로는 게시할 수 없다는 내용의 규정을 찾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관리사무소 직원의 법정 진술에 따르면 감사가 관리사무소를 방문해 감사보고서에 ‘확인필’ 도장을 날인받을 당시 소장이 그곳에 있었고, 감사가 도장을 무단으로 날인했다는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또 “동대표 A씨에게 아파트 게시물을 임의로 떼어낼 권한이 있다고 볼 만한 자료도 없다”고 일축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감사보고서는 감사가 자신의 권한에 기해 작성했고, 입대의에서 안건으로 상정돼 내용이 보고된 후 토론이 이뤄졌으며, 이후 관리사무소에서 ‘확인필’ 도장을 받아 경비원들을 통해 엘리베이터에 게시됐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어 “감사보고서 작성 및 게시 경위나 절차, 관련 법령과 관리규약 내용 등을 종합하면 감사보고서는 손괴죄의 객체인 ‘문서’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밖에 “감사보고서는 입주민이기도 한 감사가 어린이놀이터 CCTV 등 시설 운영이 적정한지를 검증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로 모든 입주민들에게 중요한 사항에 관한 것”이라며 “입대의에 상정돼 토론이 이뤄지다가 의견 충돌로 의결되지 못한 사항이라면 감사보고서 내용에 관해 입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게시하고 일정 시간 입주민들의 의견수렴을 거치는 행위가 부당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감사보고서 내용이 타당한지에 대한 판단은 피고인 A씨 개인이 아닌 입주민 전체가 하는 것이고, 감사보고서 내용이 사실인지는 손괴죄의 성립에 영향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앞서 원심 법원은 “입대의에서 감사보고서를 정식으로 승인하거나 의결하지 않았고, 감사보고서에 소장의 정식 직인이 아닌 문서수발 용도의 ‘확인필’ 도장이 날인됐더라도 그러한 절차적 하자가 감사보고서를 임의로 떼어내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하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판단했다. 

원심은 또 “감사보고서 부착행위가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피고인들은 입대의나 관리사무소에 문제를 제기해 감사보고서의 수거 여부를 결정하게 할 수 있었다”면서 “감사보고서를 임의로 떼어내야 할 만큼 긴급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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