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복합건물’의 관리 난맥상 ②
주차장・실외기・간판이 3대 민원

 

시설 뒤엉켜 나누기도 어려워

법원 판단도 건물별로 제각각

아파트, 오피스텔, 상가가 한 건물에 모여 있는 복합건물은 ‘소송 천국’이 된 지 오래다. 각자 이해관계가 달라 논란이 자주 생길 수밖에 없다. 서울시와 경기도의 집합건물관리지원단에 참여하고 있는 김성일 KM산업 이사는 “관리 관련 분쟁이 있는 복합건물들은 대부분 소송을 10여 건씩 끼고 산다”며 “서울 동대문구 모 복합건물은 현재 200여 건까지 걸려 있다”고 전했다.

김 이사는 “복합건물이 ‘원스톱 리빙’이란 장점을 가진 것은 분명하지만 공개를 추구하는 상가·오피스텔과 비공개를 추구하는 아파트처럼 목적 자체가 다른 시설을 한꺼번에 관리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지적했다.

대형마트가 들어있는 복합건물의 경우 경비와 청소 인력이 추가로 필요하다. 추가 비용 부담 문제를 두고 신경전이 벌어지기 일쑤다. 아파트와 상가가 똑같은 비율로 부담하거나 방문객이 많은 상가 측이 더 부담할 수도 있다. 양측이 정하기 나름인데, 어느 한쪽이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문제가 불거진다.

김 이사는 “집합건물법상으로는 관리비를 지분으로 계산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상가에 할증 부과할 근거가 없다”며 “할증 부과하려면 관리규약으로 별도 규정해야 하는데 이런 것에서 분쟁이 시작돼 소송으로까지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복합건물에서 가장 흔한 ‘3대 민원’으로 김 이사는 주차장, 실외기, 간판 문제를 꼽았다.

주차장 민원은 분쟁의 단골 소재다. 방문객이 많고 화물차 출입이 필요한 상가가 주차가 편한 지하 1~2층 주차장을 차지하고 아파트와 오피스텔 입주민들은 더 아래층을 쓰게 하는 데서 갈등이 시작된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상가 임차인과 방문객들의 주차장 이용을 제한하면 더 큰 싸움으로 번진다.

권형필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상가를 포함한 단지 전체에 지하주차장이 있지만 건축설계상 아파트 부분에만 지하주차장이 표시돼 있거나 시행사 입주자 모집공고 시 상가에 대해선 적은 수의 주차면적만을 특정해 기재한 때문에 분쟁이 불거진다”고 분석했다.

분쟁 양측이 맞서다 소송으로 가기도 하지만 법원이 내놓은 결론마저 한 가지가 아니다. 건물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오기도 해 다른 건물에서 판례를 기준으로 삼기도 어렵다.

최근 대전지방법원과 의정부지방법원이 비슷한 점이 많은 복합건물 주차장 분쟁에서 각각 다른 판단을 내렸다. 아파트 측이 상가의 지하주차장 이용을 제한한 데 대해 대전지법은 상가 측의 손을, 의정부지법은 아파트 측의 손을 들어줬다. 

대전지법 판결의 대상이 된 건물은 아파트 8개동과 상가 1개동으로 이뤄진 곳으로 전체 549대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지하주차장이 있다. 대전지법은 “1개동 건물의 구분소유자들이 건물의 대지를 공유하고 있는 경우 각 구분소유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지에 대해 갖는 공유지분의 비율에 관계없이 건물의 대지 전부를 용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적법한 권원(權原)을 가진다”고 판시했다.

아파트 측이 ‘건축설계 개요와 입주자 모집공고에 아파트 부분에만 지하주차장이 기재돼 있었다’고 주장한 데 대해 법원은 “건축설계 개요는 건축허가를 위해 각 건물이 최소 주차대수를 확보했음을 관할관청에 보고하는 서류일 뿐이고 입주자 모집공고는 시행사 측에서 일방적으로 작성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의정부지법 판결의 대상이 된 건물은 아파트 11개동에 상가 2개동이며 아파트 건물 내 지하주차장 1,324면과 지상주차장 7면이 설치돼 있다. 의정부지법은 “아파트 입주자 모집공고, 아파트 공급계약서, 근린생활시설(상가) 공고 및 공급계약서 등에서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아파트 구분소유자들 주차장으로, 지상주차장은 상가 구분소유자들 주차장으로 구분해 설치한 것임이 명백한 이상 원고들(상가 측)은 지하주차장에 대해 아무런 권리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실외기의 소음과 뜨거운 바람이 논란거리가 되기도 한다. 상가가 개별적으로 설치한 실외기 때문에 불편하니 이를 제거해달라는 민원이 많다.

 

미비한 규정 손보고, 건축 설계부터 ‘나누기 쉽게’

 

경기 안양에 있는 모 복합건물의 아파트 동대표 A씨는 “1층 상가에서 입주민의 통행로이기도 한 외부공간에 에어컨 실외기, 업소용 수족관과 그 실외기를 설치해 말썽이 생겼다”고 말했다. A씨는 “아파트 미관 저해, 비린내 유발, 통행공간 침범 등의 이유로 설치하면 안 된다고 안내했지만 해당 가게에선 이미 임대인과 합의한 내용이라며 설치를 강행했다”고 하소연했다. A씨는 이런 상황을 인터넷 카페에 올려 상담했지만 뾰족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실외기 설치가 공용부 에어컨 가동비용과 상가 영업권 등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인천 한 복합건물의 B소장은 상가의 처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입주 개시 때부터 상가가 100% 차 있는 곳은 거의 없고 보통 1~2년, 길게는 2~3년 이상 공실이 있다. 공용부분의 냉난방시설 비용은 ‘n분의 1’로 부담하는데 공실에 부과할 순 없으니 비용을 아끼느라 최소한으로 가동한다. 그러니 상가마다 개별적으로 실외기를 달아 냉난방시설을 가동하게 된다.”

상가의 간판이나 입간판이 미관을 해치고 통행에 불편을 준다는 민원도 잦다. 일부 지역의 주상복합건물은 밤에 빛 공해를 낳는다고 할 정도로 번쩍이는 간판을 설치해 입주민들의 불만을 산다. 하지만 상가 자영업자들의 생계와 관련된 사항이어서 관리사무소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어쩌지 못하는 것이 현실.

복합건물의 고질적 분쟁을 피할 방법은 없을까. 김성일 이사는 “집합건물법 주무관청인 법무부와 공동주택관리법 주무관청인 국토교통부가 협의해 복합용도 건물에 관한 규정을 신속히 정비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두 개의 법을 제정할 때 관리업계나 입주민 등 실무자와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법 규정이 모호해진 것이 분쟁의 한 원인”이라고 짚었다.

법규 정비에 앞서 현실적으로 관리를 고려한 건물설계가 더 시급하다는 주장도 있다. 

채희범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사무총장은 “아파트 정화조를 지하 1층에 두면서 상가 전기를 쓰게 하고, 상가 정화조를 지하 3~4층에 두면서 아파트 전기를 쓰게 하는 등 엉켜있는 건물도 있다”며 잘못된 설계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동선을 고려해 아파트와 상가의 주차장 입구를 분리하고 규모를 고려해 변압기, 정화조, 전기시설을 따로 짓는 게 좋다”고 말한다.

서울 금천구 L주상복합건물은 건축단계부터 아파트와 상가·오피스텔의 주차장 입구를 분리해 입주민과 방문객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했다.
서울 금천구 L주상복합건물은 건축단계부터 아파트와 상가·오피스텔의 주차장 입구를 분리해 입주민과 방문객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했다.

 

실제로 ‘분리 설계’를 적용한 서울 금천구의 L주상복합건물은 입주민의 관리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이 건물 입주민 박모 씨는 “건설단계부터 아파트와 상가·오피스텔 주차장 입구를 달리하고 주차구획도 나눠 확실히 주차와 관련한 분쟁의 소지도 적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가·오피스텔에 지하 1, 2층 주차장을 내줘 입주민으로서 불편한 점도 있지만 상가가 가깝다는 이점을 생각하면 양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장 실무자들은 ‘사람 하기 나름’이라는 처방을 내놓기도 한다. 분쟁이 많은 서울 마포의 H건물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T주상복합건물도 통합관리를 채택했지만 H건물과는 달리 조용하다. 최근 위탁관리에서 자치관리로 전환한 이곳은 직원 40명 전체의 고용을 승계했다. 그만큼 입주민들의 관리 만족도가 높다.

T건물도 아파트·오피스텔 720세대, 상가 61곳을 관리 중이며 각 전용면적별로 공용부 관리비를 따로 부과하고 있다. 관리주체는 하나지만 그 안에서 3종의 시설을 각각 관리한다. 이곳의 생활지원센터장 박모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공동주택관리법이든 집합건물법이든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 중첩되는 부분이나 법이 규정하지 못한 부분은 관리규약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한 번 다툼이 생기면 상대방의 주장을 문제 삼게 되는데 이때 복잡한 법체계가 발목을 잡는다. 이런 늪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박 센터장은 또 “현재 상가 측은 제외하고 아파트와 오피스텔 입주민 총 4명으로 구성된 대표회의가 상가 측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생활지원센터와 소통해 원활한 관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김 이사는 “복합건물 관리의 성패가 사람에 달렸다는 것은 그만큼 제도와 규율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증거”라며 “복합건물에 관한 미비한 규정과 갈등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건축설계 등의 문제를 하루 빨리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순도순 잘 지내다가 법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지점에서 충돌이 빚어져 일순간 ‘분쟁 단지’가 돼버리는 현실을 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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