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교체에도 연이은 사고 “기계결함 원인 아니었다”
비상정지 키박스 손대고 승강기 CCTV까지 파손
항소심도 입주민에 ‘징역 1년’

 

 

대구 북구의 모 아파트 입주민들은 지난 2019년 3월경부터 5월경까지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했다. 입주민들이 탑승한 승강기가 운행 중 갑자기 멈춰버리거나 정지 후 문이 열리는 일이 생겼고 입주민이 승강기에 갇히는 사고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승강기 유지보수업체는 되풀이되는 사고를 막으려고 문제가 있어 보이는 부품을 바꿔보는 등 수리에 나섰다. 그래도 승강기 정지 사고는 멈추지 않았다. 

어느 층에서 문제가 생겼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모든 층 승강기 문에 있는 비상정지용 키박스 안쪽에 테이프를 붙여 놨다. 

비상키를 넣으면 테이프가 떨어지게 한 것. 승강기 정지 사고가 한 번 더 생긴 직후 키박스를 확인해보니 15층 승강기 문의 키박스 내부에 부착해둔 테이프만 훼손돼 있었다. 

‘이쯤 되면 기계적 결함이 아니라 누군가가 일부러 낸 사고가 아닌가.’ 승강기 유지보수업체는 누군가 승강기 비상정지용 키박스에 비상키를 넣어 승강기를 멈추게 한 것이라고 봤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비상키를 돌린 사람을 찾기 위해 15층 승강기 문이 보이도록 CCTV를 설치했다. 두 달이 지난 뒤 이번에는 CCTV가 파손됐다. 이 아파트는 홀수 층에만 승강기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15층에서 승강기를 이용하는 14층 주민 A씨가 우산으로 CCTV를 쳐 고장낸 것이다. 

이러한 정황을 근거로 A씨는 수사를 받고 기소됐다. 2019년 3~5월경 승강기 바깥문에 있는 비상정지용 열쇠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려 승강기를 멈추게 하는 방법으로 15회에 걸쳐 승강기의 효용을 해해 손괴하고, CCTV를 손괴한 혐의였다. 

A씨는 재판에서 승강기를 손괴한 적이 없다고 맞섰다. CCTV 손괴는 인정하면서도 개인정보 유출 및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한 정당한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입주민들 안전 위협… 죄질 나빠

이 사건을 다룬 대구지방법원은 2월 A씨에게 재물손괴죄를 적용해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A씨의 항소로 진행된 2심 대구고등법원 제1-3형사부(재판장 정성욱 부장판사)도 1심 형량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15층 승강기 바깥문의 비상정지용 열쇠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려 승강기를 멈추게 하는 방법으로 승강기를 손괴한 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승강기가 멈춘 것을 시설 노후화에 따른 단순 고장 탓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승강기 유지보수업체가 이 아파트의 승강기 정지 사고 이후 여러 차례 부품교체와 수리에 나섰으나 멈춤 현상이 이어졌고,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의 정밀점검에서도 별도의 사고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을 재판부가 모두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또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사고 원인에 의문을 품고 각 승강장 앞 복도에 CCTV를 설치한 이후 승강기 멈춤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A씨는 승강기에 관해 잘 아는 사람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1999~2014년 대구 북구의 소규모 공동주택 관리사무소에서 영선기사 및 관리과장으로 근무하면서 승강기 관리업무도 담당했다는 것. A씨가 일했던 아파트와 거주 아파트가 공교롭게도 똑같은 승강기 비상정지용 키를 사용 중이었다. 특히 A씨가 2019년 3월경 휴대폰으로 승강기문 개방요령 또는 승강기 추락사고 관련 동영상을 시청한 것으로 수사 결과 드러나기도 했다. 

2심 재판부는 “입주민이 상용하는 승강기의 효용을 해함으로써 수리 등에 재산적 손실이 발생한 것은 물론이고, 승강기가 실제로 멈추거나 멈출지도 모른다는 염려에 이용객이 느껴야 했던 불안과 공포를 감안하면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A씨는 공소사실 일체를 부인하면서 승강기의 자체 결함으로 치부하는 등 변명만 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고 꾸짖었다.

A씨는 상고를 포기해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A씨가 승강기 사고를 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최승관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승강기 손괴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는 없으나 법원은 여러 사정을 종합했을 때 A씨가 승강기를 손괴한 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며 “15회에 걸친 A씨의 고의적인 승강기 손괴 행위로 인해 승강기 운행이 중단된 사건으로 입주민들이 추락 위험에 공포를 느끼고 안전이 위협받은 점을 감안하면 A씨에 대한 처벌이 가벼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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