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횡령 기소 소장 ‘무죄’
법원, 개인이 쓴 것 아냐

공동주택 관리현장에서 잊을만하면 거론되는 한전 검침수당. 이번에도 관리사무소장에게 적용된 업무상횡령죄는 인정되지 않았다.

제주지방법원 형사2단독(판사 이장욱)은 지난달 28일 ‘검침수당’을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회식비 명목으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업무상횡령 혐의로 기소된 제주시 모 아파트 K소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공소사실에 의하면 K소장은 2013년 9월경부터 2018년 12월경까지 한국전력공사로부터 매월 지급받은 검침수당을 입주민들을 위해 업무상 보관하던 중 입주자대표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회식비, 간식비, 식사비 명목으로 총 108회에 걸쳐 합계 약 544만원을 임의로 사용, 횡령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법원은 횡령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법원은 먼저 “한전은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세대별 전기사용량, 요금 등을 확인하고 공동시설 전기사용료를 분담 부과해 각 세대에 전기요금을 고지하고 이를 수납해 한전에 전체 전기사용료를 납부하게 되는 바, 이 같은 작업에 대해 한전이 검침수당을 지급하는 것”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공소사실 행위가 횡령죄에 해당하려면, 한전이 지급한 검침수당이 공소사실에 피해자로 기재된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귀속된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면서 “하지만 한전이 검침수당을 지급하는 상대방이 관리사무소나 그 직원들인지, 입대의인지, 입주민들인지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특히 “K소장은 종전 소장이 하던 대로 업무처리를 했고, 검침수당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도 아니다”며 “검침수당 지출도 장부에 기재하고 지출결의서를 작성해 내부결재절차를 거치는 등 나름의 절차를 준수했다”고 인정했다. 

한편 검사 측은 2015년 12월경 개정된 아파트 관리규약에서는 검침수당이 잡수입에 해당해 입대의 의결을 거쳐 지출하도록 규정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2015년 관리규약에는 잡수입 집행 및 회계처리에 관해 ‘조례에 따른 잡수입은 관리비 등의 회계처리와 같은 방법으로 처리한다’고 규정했고, 제주도 주택조례에는 ‘잡수입(금융기관의 예금이자, 연체료 수입, 부대시설·복리시설의 사용료 등 공동주택 관리로 인해 발생하는 수입)이라고만 규정할 뿐”이라며 “검침수당이 잡수입에 해당하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봤다. 

그러자 검사 측은 2017년 4월경 개정된 관리규약에서는 검침수당이 잡수입으로 명확히 규정됐기에 그 이후에는 횡령죄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법원은 이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아파트의 2017년 관리규약에는 ‘검침수입 등에서 발생한 잡수입’을 잡수입의 하나로 규정하면서 잡수입 우선 지출항목으로 ‘전기검침 및 부과업무 수행자’를 포함했으며, 잡수입 지출 시 입대의 의결을 거치도록 규정했다. 

법원은 “검침수당은 주로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식사비, 간식비 등으로 지출됐기 때문에 관리규약의 ‘전기검침 및 부과업무 수행자’ 항목에 따라 지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사용처보다는 입대의 의결을 거치지 않은 절차적 측면이 문제가 될 수는 있다고 봤다. 

그러나 “2017년 관리규약 개정 경위, 개정 내용을 K소장이 인식하고 있었는지, 그 이후에도 계속 종전과 같은 방식으로 지출된 이유, 입대의에서 문제 삼지 않은 이유 등이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다”며 “2017년 관리규약 개정 이후 K소장이 이를 알면서도 새로이 횡령의 범의를 갖고 범행에 나아갔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고, 관리규약에서 정한 절차를 구비하지 못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횡령죄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로써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횡령죄에 해당한다거나 횡령의 고의 내지 불법영득의사가 있었음을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무죄로 결론냈다. 

K소장은 “그동안 한전 검침수당으로 인해 전국의 많은 소장들이 소송에 휘말리는 등 소모적인 논쟁을 겪었다”면서 “이런 불필요한 소송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전에서 보다 명확한 정리를 통해 제도적인 보완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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