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 갑질 대비 ‘보디캠’ 도입한 입대의
영원히 묻힐 뻔한 찰나의 결정적 장면 기록
경비원뿐 아니라 입주민도 환영
“전국 모든 단지로 확산하길”

 

주차차단기를 열어주지 않는다며 경비원을 향해 폭언을 쏟아내는 방문객의 모습이 보디캠에 고스란히 찍혔다.
주차차단기를 열어주지 않는다며 경비원을 향해 폭언을 쏟아내는 방문객의 모습이 보디캠에 고스란히 찍혔다.
경비원의 가슴에 부착하는 보디캠. 위기 시 버튼을 누르면 녹화가 시작된다.
경비원의 가슴에 부착하는 보디캠. 위기 시 버튼을 누르면 녹화가 시작된다.

지난달 26일 아침 930분경. 인천 서구의 모 아파트 경비원 A씨는 입주민들의 바쁜 출근길 차량출입을 정리하고 나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 사이 미등록차량 한 대가 단지 입구 차단기 앞에 멈춰 섰다. A씨는 근무수칙에 따라 차단기를 열기 전 평소대로 방문지가 어디인지 물었다. 그때부터가 악몽의 시작이었다.

운전자는 다짜고짜 차단기를 올리라고 요구했고, A씨는 몇 동 몇 호에 방문하는지 말씀해 주셔야 올려드릴 수 있다고 응대했다. 순간 운전자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 나왔다.

폭언을 수분간 퍼부은 운전자는 차량 옆에 다가간 A씨를 향해 차문을 열고 발로 밀어 가격하기도 했다. 연락을 받은 관리과장이 달려와 상황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방문객은 A씨의 태도와 눈빛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더욱 불같은 분노를 표출했다.

돌발적으로 일어난 황당한 사건은 한동안 이어지다 경찰이 도착하고 나서야 겨우 진정됐다. 경비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행사하며 막무가내로 차단기를 열라고 요구하던 방문객은 경찰이 행선지를 묻자, 방문세대를 말한 후 곧바로 차를 몰고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경찰관에겐 쉽게 밝힐 것을, 경비원에겐 그렇게 생떼를 부리며 골탕을 먹였던 것이다.

경비실로 돌아온 A씨는 다시 업무를 시작하려 했으나, 곧바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몸에선 경련이 일었고, 팔다리가 마비되는 증상까지 나타나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 사건은 공중파 뉴스에 보도돼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공분을 샀다. 거주하는 입주민이어도 주차카드나 스티커가 없으면 단속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 - 방문세대를 밝히지 않은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 경비원 본연의 업무수행에 고함치며 온갖 욕설을 퍼부은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경비원들을 비롯한 관리 종사자들은 이런 일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일상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단지를 자주 방문하는 외부인일수록 왜 매번 물어보느냐며 짜증을 내는 경우가 많다. 또 차량을 바꾸고 관리사무소에 등록하지 않은 상태에서 차단기를 올려주지 않는다며 아직도 나를 못 알아 보냐!”고 화내는 입주민도 있다.

그런데 보도를 접한 관리 종사자들이 주목한 건 정작 따로 있었다. 이토록 적나라한 장면이 어떻게 그리 자세하게 녹화돼 방송될 수 있었느냐는 것.

연로한 경비원에게 반말은 물론 거친 욕설을 퍼붓는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생하고 소름끼칠 정도로 놀라웠다”, “혹시 대역배우가 연기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는 반응들이 나왔다.

이 결정적 장면을 포착해 낸 비장의 장치는 바로 경비원 가슴에 부착된 보디캠(body cam)’이었다. ‘액션캠이라고도 불리는 이 장비는 경찰관이나 소방관의 가슴, 어깨 또는 헬멧 등에 부착하는 웨어러블 기기로, 주로 사건현장의 상황증거를 담기 위한 용도로 사용해 왔지만, 아파트단지 경비원에게 부착하도록 한 케이스는 최근까지 알려진 바 없었다. 보디캠이 아니었다면 견딜 수 없는 모멸감에 쓰러져 병원신세까지 지게 된 경비원의 억울함을 증언해줄 수 있는 수단은 세상에 없었다. 영원히 묻혀 버릴 뻔한, 인간적 존엄을 짓밟은 폭력이 손바닥보다 작은 기기 하나 덕분에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뉴스를 접한 해당 아파트 입주민들은 보디캠 덕분에 우리 아파트 경비원의 억울한 사연이 밝혀져 참 다행스럽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정말 좋은 결정을 했다”, “다른 아파트 경비원들에게도 보디캠을 달아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관리사무소에도 보디캠 구입경위와 사용법에 대한 인근 아파트 입주민대표와 소장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행선지만 밝혔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방문자는 졸지에 피고인 신세가 됐다. 50대 여성으로 알려진 그는 모욕죄, 업무방해죄, 폭행죄 등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나부터 조심하자는 마음으로 도입

인천 청라 한양수자인레이크블루아파트 박승남 입대의 회장(사진 오른쪽)과 보디캠을 부착한 경비원
인천 청라 한양수자인레이크블루아파트 박승남 입대의 회장(사진 오른쪽)과 보디캠을 부착한 경비원

사건 발생의 주인공으로 주변의 찬사를 받은 아파트는 인천 청라 한양수자인레이크블루아파트. 경비원들에게 보디캠을 달도록 한 사람은 이 아파트 박승남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었다.

40대 초반으로 자동차 관련 설계업무를 맡고 있는 그는 20192월에 입주한 1,534세대 이 아파트의 첫 감사에 취임했다가 지난해 5월 회장으로 선출됐다.

감사시절부터 관리현황 파악에 주력한 박 회장은 특히 관리 종사자의 처우에 관심이 많았다.

 

근로자 고충, 음지에 방치할 순 없었다

박승남 입대의 회장
박승남 입대의 회장

직원들 입주민으로부터 수모 겪자

불만민원 나에게 전화하라

입주 초기부터 심각한 주차난으로 관리직원들이 고생하며 일부 입주민들로부터 수모를 겪자 박승남 입대의 회장은 오히려 주차단속을 더욱 강력하게 시행하도록 지시하고,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단지에 공개해 모든 입주민에게 불만민원이 있으면 나에게 전화하라고 공표했다.

불법주차 스티커를 쉽게 떼어내지 못하도록 더욱 강력한 접착제로 붙이고, 회장이 직접 나서서 불법·편법행위에 대응하자 놀랍게도 민원이 잦아들었다.

약자에 더 마음을 쓴 박 회장은 지하주차장 구석에 판자로 임시 가설한 경비·미화원 휴게실을 지상의 볕이 잘 드는 주민공용시설로 옮기도록 조처했다.

보디캠을 구입해 경비원들에게 달도록 한 것도 내외부인을 막론하고 경비원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의 일환이었다.

박 회장은 경비원을 비롯한 모든 관리직원은 입주민을 위해 일하는 우리 가족인데, 잘 대우해주진 못할망정 아랫사람 부리듯 막 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보디캠을 달면 우선 회장인 나부터 조심하게 되고, 모든 입주민들도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존중하며 의견을 교환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한다.

이 단지 경비원 수는 8. 14명씩 맞교대하므로 대당 35만원의 고급형 보디캠 4대를 구입했다. 작동은 24시간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발생할 경우 버튼을 누르면 그때부터 녹화가 시작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경비원과 입주민의 사생활 침해 우려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보디캠을 단 경비원들은 이 작은 기계 하나가 경비원의 마음을 얼마나 든든하게 만들어주는지, 달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라며 주민대표와 입주민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더욱 성실하고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고 말하면서 밝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까지 보디캠에 딴지를 거는 입주민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게다가 쓰러진 경비원을 위로하고 치료비 마련을 위해 모금운동까지 벌이기도 했다. 그 물건은 단순한 녹화장치가 아니었다.

깐깐한 주민대표의 관심과 열정이 경비원의 가슴에 감동과 당당함을, 입주민들의 가슴엔 자부심을 심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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