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력정지 가처분보다 위법성 등 고도의 소명 필요

해임투표가 실시된 후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과 달리 해임투표의 진행 자체를 금지하는 가처분은 보다 높은 소명이 필요하다는 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즉 해임투표 자체가 금지된다면 해임투표를 실시하는 선거관리위원회는 그 가처분에 대해 다퉈 볼 기회조차 박탈당하게 돼 가처분을 발령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소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제5민사부(재판장 박남준 부장판사)는 최근 경기 성남시 소재 모 아파트 동대표인 A씨가 자신의 동대표 해임을 위한 투표절차 진행을 금지해 달라며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제기한 투표절차금지 등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지난 3월 A씨가 거주하는 동의 64세대 중 7세대는 이 아파트 선거관리위원회에 A씨가 입대의나 선관위 구성원에 대해 지속적으로 악의적인 민원을 제기하는 등 해임사유가 존재한다며 해임을 요청, 선관위는 같은 달 해임투표 절차를 진행하기로 결의하고 3월 말 A씨에게 소명을 요청했다.

이후 지난 4월 초 해임요청서와 A씨의 소명자료를 입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공고했고 이후 해임투표 실시를 공고했다.

이에 대해 A씨는 “자신이 아파트 관리규약에 따른 해임사유가 없음에도 선관위가 해임사유가 있는지를 확인하지 않은 채 해임투표 실시를 결정하고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해임투표 실시에는 절차상·실체상 하자가 있어 위법하므로 해임투표는 금지돼야 한다”며 해임투표의 진행을 금지하는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해임투표의 진행 자체를 금지하는 가처분은 고도의 소명이 필요하다고 판시하면서, 해임투표의 효력이 없음을 주장하는 당사자는 본안소송에 의해 이를 다투는 것이 가능함은 물론 가처분으로 그 해임투표의 효력정지를 구할 수도 있는 등 사후적인 권리구제방법이 마련돼 있지만, 해임투표의 진행 자체를 금지하는 가처분을 발령하는 경우 해임투표를 실시하는 주체는 그 가처분결정에 대해 다퉈 볼 기회를 사실상 박탈당하게 된다고 봤다. 

이에 따라 그 가처분을 발령하기 위해서는 위법성이 명백하고 해임투표 진행으로 또 다른 법률적 분쟁이 초래될 염려가 있는 등 피보전권리와 보전의 필요성에 대한 고도의 소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현재까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A씨가 입대의를 상대로 해임투표의 진행 금지 및 동대표 직무집행 정지의 효력정지를 구한 피보전권리와 보전의 필요성이 소명됐다고 보기 어렵고, 해임투표는 관리규약에서 정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 A씨에 대한 해임요청이 이뤄졌으며, 선관위는 규약에서 정한 바에 따라 A씨에게 소명기회를 부여하고 이를 공고한 점 등에 비춰보면 해임투표에 절차상의 하자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해임사유의 존부와 관련해 재판부는 “해임 여부는 입주민들의 자치적 판단 대상이므로 관리규약 해임 사유의 존부는 입주자들의 자치적 판단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면서 “A씨가 선관위 위원장 등에 대해 제기한 악의적 민원 등은 관리규약 상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동대표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조항이나 입주자 등이 입대의나 선관위 업무를 방해하는 것을 금지한 조항 등을 위반했다고 볼 여지가 있으므로 이 아파트 관리규약에서 정한 해임사유에 명백히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아파트 입대의를 대리해 가처분 기각 결정을 이끌어 낸 장혁순 법무법인 백하 변호사는 “이번 결정은 법원이 해임투표 진행 자체를 금지하는 가처분에 대해 보다 엄격한 소명이 필요하다는 분명한 판단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고 언급하면서 “해임투표를 요청받은 선관위로서는 해임사유에 대해 입주민들의 자치적 판단을 받을 수 있도록 투표를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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