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H아파트 ‘간 큰’ 경리직원 2년 6개월간 3억원대 횡령
외부회계감사서도 적발 안돼
소장 손해배상액 범위 1심 30%→2심 20%

경리직원이 지난 2016년 7월경부터 2018년 10월경까지 출금전표를 변조해 관리비 계좌에서 추가 출금을 하고, 예금 잔액증명서를 위조해 관리비가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 것처럼 꾸며 관리비 3억1,000여 만원을 횡령해 충격을 던진 경북 포항시 H아파트. 

더욱 놀라운 것은 2017년에 2016년도 재무제표에 대한 외부회계감사를 진행했으나 경리직원의 횡령사고를 적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시 회계감사 결과 ‘적정의견’의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회계사는 은행조회서를 발급받아 확인하진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관리비를 횡령한 경리직원을 비롯해 관리사무소장(2014년 5월경부터 2019년 2월경까지 근무), 회계사(2015년도, 2016년도 아파트 재무제표에 대한 외부감사 수행), 입대의 회장(2017년부터 2018년까지 재임), 감사, 총무이사, 동대표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 결과 1심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은 지난해 6월경 경리직원은 3억1,000여 만원 중 변제하고 남은 1억5,500여 만원을 입대의에 지급하고, 소장은 경리직원과 공동해 이 돈 중 9,300여 만원(30%)을, 회계사는 1,100여 만원(10%)을, 입대의 회장과 감사는 각 2,300여 만원(10%)을 지급하라고 주문한 바 있다. 이때 손해배상액은 해당되는 재임기간 등을 고려해 산정했으며, 나머지 입대의 총무와 일반 동대표들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다. 

이 같은 1심 판결에 소장만 항소를 제기했고, 최근 진행된 2심 대구고등법원 민사2부(재판장 이재희 부장판사)는 소장의 항소를 일부 받아들여 1심에서 인정했던 30%의 책임 범위를 20%로 낮췄고 이는 그대로 확정됐다. 

재판부는 “소장은 관리비 등의 청구·수령·지출·관리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경리 담당직원이 불법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예금잔고와 관계 장부 등을 대조해 관계 장부 등이 제대로 작성됐는지, 수납된 금원이 예금 계좌에 입금됐는지 등을 확인하고 잘못이 있을 경우 이를 지적해 바로잡는 등 경리직원의 업무를 지휘·감독할 의무가 있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경리직원이 위조한 예탁금 잔액증명서는 일반인이 육안으로 볼 때 위조 가능성을 의심할 여지가 있는데 매월 예금잔고 증명을 받아 관계 장부와 대조해야 하는 소장이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위조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또한 “소장이 지출결의서와 통장의 입출금 내역 등을 대조했을 경우 경리직원의 횡령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경리직원은 수사기관에서 ‘소장에게 통장 잔액이 얼마 남았다고 거짓으로 구두 보고하면 믿었다’, ‘소장이 아무런 의심 없이 OTP 카드 번호를 불러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리직원의 횡령기간 동안 이 아파트 관리비 입출금 통장, 인터넷뱅킹을 위한 공인인증서와 비밀번호는 경리직원이 관리했고, 소장은 OTP 카드를 보관하면서 경리직원이 인터넷뱅킹을 이용할 때 OTP 카드 비밀번호를 알려줘 관리비를 인출할 수 있도록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사실들을 토대로 재판부는 “경리직원의 횡령이 2년 6개월 넘게 지속됐고, 횡령금액도 3억원이 넘는 고액인 점 등에 비춰 볼 때 소장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소장은 경리직원과 공동해 입대의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외부회계감사가 실시됐음에도 경리직원의 횡령이 발각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해 소장이 배상해야 할 손해액의 범위를 20%로 제한했다. 

재판부는 “전문가인 회계사에 의해 실시되는 외부회계감사에서도 예금 관리에 문제점이 지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장으로서도 경리직원의 불법행위를 발견하기 어려웠던 측면이 있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소장이 통장의 입출금내역을 직접 확인해 지출결의서 등과 대조했다면 경리직원의 횡령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긴 하나, 공동주택 회계처리기준에 의하면 예금통장 관리와 통장을 통한 수입금 취급 및 기장업무는 기본적으로 회계담당자인 경리직원의 독립된 업무에 속하기 때문에 소장으로서는 외부회계감사에서조차 문제가 지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무적으로 회계담당자가 취급·관리하는 통장의 실물을 확인하거나 통장의 입출금 내역을 따로 확인하는 등의 조치를 생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소장의 사용자인 입대의 회장이나 감사도 그러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경리직원의 횡령이 계속될 수 있었다”며 “소장에게 경리직원의 횡령으로 인한 입대의 피해 상당액 전부에 대해 책임을 부담하게 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로써 “1심 판결은 이와 결론을 일부 달리해 부당하다”며 소장의 항소를 일부 받아들여 초과 지급을 명한 소장 패소 부분을 취소했다.   

한편 경리직원은 업무상횡령으로 기소돼 2019년 8월경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200시간을, 같은 해 10월경에는 사문서변조죄 등으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그대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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