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승강기 갇힘사고 구조 논쟁
'승강기 강제 개방'에 관한 오해와 진실

“승강기 훼손 피하려 119 막는 관리사무소”

비난 마주하는 소장과 직원들

비용?민원 아닌 추가사고 걱정에

안전 구조 1순위는 승강기업체

119도 승강기 전문가는 아냐

2차 사고 위험 상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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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파트 호 입주민이자 오늘 아침 엘리베이터 갇힘 피해자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갇힘사고에 대한 대응 매뉴얼이 너무나 형편없었기 때문입니다. 사고 최초 발생 후 비상버튼을 눌러 관리사무소에 신고했고 승강기업체에서 출발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고 결국 저희 어머니가 119에 신고해 갇힌 지 50분 만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중략) 업체만 마냥 기다리지 말고 사람 구출 후 엘리베이터 점검을 받길 바랍니다. 대응 매뉴얼이 고작 업체를 기다리는 거라면 많이 실망스럽네요.

지난 1월 인천의 모 아파트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 같은 글이 올라왔다. 해당 입주민의 어머니 역시 관리사무소에서 개방할 수 없다고 해 업체를 불렀고, 업체를 계속 기다리다 119에 신고하자고 하니 119는 승강기를 훼손한다면서 시간을 더 지연시켰다며 관리사무소의 대처를 비판했다.

이처럼 인명구조보다 승강기 훼손을 막는 것이 우선이냐는 비판은 관리사무소엔 익숙하다. 심한 경우 입주민이 소장을 경찰에 신고하는 사건으로 비화하기까지 한다. 지난 2017년엔 부산 모 아파트에서 아내의 구출을 위한 119의 승강기 문 강제개방을 소장이 막았다며 경찰에 신고한 입주민 이야기가 (관련기사 제10392017830일자), 2018년엔 인천 모 아파트에서 승강기에 갇힌 아들의 구출이 늦어졌다며 소장을 폭행한 입주민 이야기가(관련 기사 제1080201872일자) 보도됐다. 실제로 관리사무소가 승강기 훼손을 막기 위해 인명구조를 지연시키는 것일까.

관리사무소장들은 그런 비난에 대해 입주민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억울하고 난처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승강기 갇힘사고 발생 시 대부분의 아파트는 승강기 유지보수업체에 신속히 연락한 뒤 업체가 도착할 때까지 직원들이 승강기 문 앞에서 입주민의 상태를 수시로 살핀다. 업체 출동이 지연되는 경우엔 119에 신고해 구출한다. 승강기 또는 구조 전문가가 아닌 관리직원이 구조활동을 벌이다 인명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

한국승강기안전공단에서도 이러한 이유로 승강기업체 또는 119에 신고하고 기다리도록 권장하고 있다. 승강기가 갑자기 멈춘 것처럼 구조 과정에서 갑자기 동작하게 되면 입주민과 직원 모두 2차 사고를 피할 수 없다는 게 설명이다.

특히 119는 승강기 문을 강제 개방하는 반면 승강기업체는 승강기 상태를 살피고 안전조치를 취한 후 승객을 구출하기 때문에 2차 사고 예방에 대한 승강기업체의 신뢰가 훨씬 높다. 이 때문에 아파트 직원들로선 최우선으로 승강기업체를, 대안으로 119를 기다리는 게 최선인 셈이다.

119의 승강기 문 강제개방을 막았다며 입주민으로부터 경찰 신고를 당했던 부산 모 아파트 소장은 당시 승강기업체 기사가 곧 현장에 도착한다는 연락이 왔고, 강제개방 시 추가사고의 위험이 있어 상황 판단이 혼란스러웠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이 지점이 오히려 입주민들로 하여금 승강기 훼손 때문에 구조를 막는다는 인식을 주고 있다. 30분에서 50분씩 갇혀 있는 입주민들로선 관리사무소의 대처가 안일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

1월 사고가 발생한 인천 아파트 소장은 폭설로 인해 출동이 지연된 데다 승강기가 층 사이에 걸려 있어 섣불리 구조에 나설 수 없었고, 갇힌 입주민은 30대 정도의 성인으로 침착하게 잘 대처하고 있어 업체를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업체가 20분 내 도착하지 못하면 119를 통해 구출하는 방법으로 매뉴얼을 융통성 있게 운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구조 나선 경비원 사망법원 전문가에 맡겼어야

평소 직원에 구조 맡기던 소장 업무상과실치사인정

승강기공단 승객, 빠른 구조보단 안전한 구조 우선해주길

 

 

 

 

일부 아파트에선 위험을 감수하고 먼저 승강기 문을 열어본 뒤 승강기가 층 사이에 걸려있지 않으면 사전에 안전교육을 이수한 직원에 한해 직접 구조에 나서고 있다.

인천 A아파트 소장은 승강기 훼손도 복구공사로 인한 비용과 민원, 이용 불가능한 기간 등을 고려하면 절대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추후 문제다. 관리사무소 직원들도 갇힌 입주민을 생각하면 애가 타는 건 마찬가지다. 이런 부분 때문에 직원들이 가능하면 직접 구조에 나서고 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큰 사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건지 생각해보면 어느 것이 옳다 답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역시 조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5년 경기 군포 모 아파트에서 승강기에 갇힌 입주민을 구조하기 위해 승강기 문을 강제 개방했다가 경비원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 2019년 관리직원과 소장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가 인정된다는 최종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관련기사 제1124201965일자>

승강기 갇힘사고 신고를 받은 관리직원과 경비원이 사고지점인 25층으로 올라갔으나, 그 사이에 다시 승강기가 정상 작동한 게 문제였다. 입주민은 무사히 내렸으나 이를 알지 못한 채 25층에서 승강기 문을 강제 개방했던 두 사람 중 경비원이 승강기 위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균형을 잃고 1층에서 올라오던 승강기 위로 추락해 사망한 것이다.

당시 1심 법원은 승강기 문을 강제 개방할 경우 추락으로 인한 사고 위험이 있으므로 전문가의 도착을 기다려 전문가로 하여금 실시토록 해야 한다

고 했으며, 대법원 역시 소장은 반드시 승강기 운행과 안전에 대한 지식을 갖춘 관계자로 하여금 비상열쇠를 이용해 구조작업을 하게 할 의무가 있었는데도 관리사무소 직원으로 하여금 관행적으로 승객을 구조하도록 계속 방치한 업무상 과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현행 승강기 안전관리법 및 동법 시행규칙, 승강기 검사 및 관리에 관한 운용요령에서는 승강기 갇힘사고 시 승강기 안전관리자로 하여금 신속히 승강기를 조작해 구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이를 위해 매년 1회 이상 승강기 조작에 관한 훈련을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2차 사고의 위험 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엔 승강기 유지관리업체 소속 기술인력 또는 119구조대원에 의해 구출 활동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 B아파트 소장은 “2차 사고의 위험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 현장이 과연 있는지 묻고 싶다좀 더 안전하게 구조하고자 승강기업체나 119를 기다리다 구조가 지연돼도, 신속한 구조를 위해 관리직원이 나섰다 2차 사고가 나도 관리사무소는 비난과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문제에 관해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측은 승강기 유지관리업체의 출동 및 구조시간 지연으로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유지관리업체의 출동시간 보장 등 계약사항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빠르게 구조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구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공단은 승강기가 정지한 상태는 고장 시 안전장치가 정상 작동한 것으로서, 응급환자가 발생하는 등의 위급상황이 아니라면 빠르게 구조받는 것보단 안전하게 구조받는 것이 우선 돼야 한다승객은 갇힘사고 시 구조요청 후 침착하게 기다리며 구조자의 지시에 따라 행동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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