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사망 인부와 고용관계・노무 도급관계 인정 안된다”

지난해 5월 4일 오후 2시 56분경 경기도 용인시 소재 모 아파트. 지하주차장 채광창의 누수보수공사를 진행하던 A씨가 추락,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뇌출혈로 끝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공사업자 A씨는 당시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하주차장 채광창에 기대어 실리콘으로 누수 보수작업을 하던 중 플라스틱 캐노피가 벌어지며 생긴 틈새로 지상 1층에서 지하 1층 주차장 콘크리트 바닥으로 추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채광창 누수 보수공사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의결을 거쳐 관리사무소장이 A씨와 공사금액 약 300만원으로 계약을 체결했으며 계약서상에는 총 2곳의 채광창에 대해 같은 해 5월 2일 착공해 6일에 준공하기로 정한 바 있다.   
사고 후 A씨의 유족(배우자와 아들)은 해당 아파트 주택관리업자 B사와 입대의(이하 피고들)를 상대로 약 2억2,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유족 측은 “B위탁사는 아파트 용역관리자고, 입대의는 공사비를 실제로 부담하고 B위탁사를 지휘·감독하는 지위에 있었다”며 “공사계약은 노무도급계약 또는 실질적 고용계약으로서 피고들은 A씨에 대해 생명·신체의 안전을 배려해야 할 보호 의무를 부담함에도 채광창 하자를 점검하고 추락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안전장비 제공 등 안전조치 의무를 게을리 해 A씨가 사고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추락사고는 공작물인 이 아파트의 설치·보존상 하자로 인해 발생한 것이므로 B위탁사는 아파트 점유자, 입대의는 아파트 소유자로 민법 제758조에 따라 사고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법원은 유족의 청구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원지방법원 민사15부(재판장 이헌영 부장판사)는 최근 “피고들과 A씨 사이에 체결한 공사계약은 일반 도급계약이며, 유족이 주장한 사정만으로는 A씨와 피고들이 실질적 고용관계나 노무도급관계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공사는 기존에 시공돼 있던 채광창 접착 부위 실리콘 및 기타 이물질 제거 후 그 부위의 접착력 강화 및 방수를 위한 실리콘 작업을 하는 것으로서 일체의 작업을 모두 A씨와 A씨의 지시를 받은 인부 C씨가 한 것으로 보일 뿐, 피고들이 A씨에게 공사와 관련해 구체적인 지시·감독을 했음을 인정할 만한 별다른 증거가 없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또 “A씨가 20년 넘게 이 아파트와 같은 공사를 수행했기에 안전장비 착용 등 조치가 이뤄져야 함을 알고 있었고, 인부 C씨에게도 안전관리 교육을 실시했으며, 주변 철제 구조물에 안전띠를 고정하고 작업하는 것이 가능했음에도 스스로 안전장비 착용 등을 하지 않고 작업하다가 사고를 당하게 됐다”면서 “사고는 공사를 도급받아 진행하던 A씨의 과실로 발생, 피고들에게 어떠한 고의 또는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편 유족은 “피고들이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로, 공사가 안전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작업발판 등의 안전시설을 설치하는 등 A씨가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관리·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위반했다”는 주장도 펼쳤다. 
하지만 재판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제23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안전상 조치의무는 근로자를 사용해 사업을 행하는 사업주가 부담해야 하는 재해방지의무로서 사업주와 근로자 사이에 실질적인 고용관계가 성립하는 경우 적용되는 것”이라며 A씨와 피고들 사이에 실질적인 고용관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일축했다. 특히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민법 제758조 제1항에 규정된 공작물의 설치·보존상 하자는 공작물이 그 용도에 따라 통상 갖춰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서, 안전성의 구비 여부를 판단함에는 공작물의 설치·보존자가 공작물의 위험성에 비례해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방호조치 의무를 다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며 “따라서 공작물에서 발생한 사고라도 그것이 공작물의 일반적인 용법에 따르지 않은 이례적인 행동의 결과 발생한 사고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작물의 설치·보존자에게 그러한 사고에까지 대비해야 할 방호조치 의무가 있지 않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이 아파트의 공사 내용 자체가 채광창의 하자, 즉 노후화로 접착이 불량해져 누수가 발생해진 것을 보수하기 위한 것으로 A씨는 그 하자의 존재 및 작업 도중 하자 있는 채광창의 접착면이 벌어질 수 있음을 충분히 인식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안전장비를 갖추지 않고 채광창 위에 직접 올라가 작업을 한 것은 채광창의 일반적인 용법에 따른 사용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공작물의 설치·보존자인 피고들에게 그러한 사고에까지 대비해야 할 방호조치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피고들이 사고 발생에 필요한 주의를 해태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피고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결론 냈다. 
이 같은 판결은 유족이 항소를 제기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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