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심사 접수는 6년간 7만여건…결로・누수・균열 順 신청
“판결금 만족도 35% 그쳐” “건설사 투명한 정보공유 필요”

수억 원 이상을 들여 새 아파트를 마련한 설렘은 길어야 며칠이다. 입주민은 곧바로 균열, 누수, 곰팡이와 씨름하는 현실에 직면한다. 시공사와의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다툼이 길어지고 관리사무소는 입주민의 하자 민원으로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서울 서초구 모 아파트와 건설사는 4년간 하자보수 갈등을 이어가며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건설사가 지난 1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상대로 공갈미수・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하는 일까지 벌어졌고 이 회장은 최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충북 모 아파트는 2년 넘게 입주가 지연돼 입주예정자협의회가 건설사와 갈등을 겪다가 지난달 입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파트 안정성에 대한 불신이 남아 하자보수 분쟁이 뻔한 상황이다. 이 아파트 관리 관계자 A씨는 “입주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건설사와의 갈등이 있어 하자담보책임기간 내내 소송과 민원에 시달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동주택 하자에 대해 입주자는 입주자대표회의를 통해 시공사 또는 사업주체에 보수를 청구할 수 있다. 여기서 합의가 이뤄지기도 하지만 결렬되면 조정이나 소송으로 가야 한다.

2024년 하자심사 분쟁조정 사례집에 게재된 하자감정 사례
2024년 하자심사 분쟁조정 사례집에 게재된 하자감정 사례

소송 전 분쟁 해결을 위해 마련된 행정적 조정 기구가 국토교통부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다. 한국건축시공학회지에 게재된 ‘공동주택 하자유형별・공종별・공간별 실태분석 연구’ 논문에 따르면 2018~2023년 6년간 하자관리정보시스템(HMIS)에 접수된 하자심사 7만687건 중 2만812건(29.4%)이 하자로 판정됐다. 나머지는 하자 아님, 신청 취하, 담보책임기간 경과 등으로 하자로 인정되지 않았다.

신청된 하자는 결로(17.8%), 누수(8.5%), 균열(7.9%), 오염 및 변색(7.0%), 들뜸 및 탈락(6.1%) 등 순이었다. 결로하자는 창호공사와 단열공사에서 발생하는 비율이 높았고 누수하자는 침실과 거실의 철근콘크리트공사와 방수공사, 균열하자는 화장실과 지하주차장 및 옥상에서 주로 발생했다. 공간별로는 세대 내가 대부분이었다. 공용공간에서는 지하주차장(2.3%)이 가장 많았다.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하심위의 결정은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가지며 건설사는 보수를 신속히 이행하고 그 결과를 HMIS에 등록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토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6월까지 인정된 하자 6462건 중 57%인 3450건만이 보수 이행 결과를 HMIS에 등록했다. 하자판정의 43%가 건설사의 의도적인 불이행 또는 지연으로 방치되는 상황이다.

보수 불이행에 대한 현행 제재 수단은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에 불과하다. 건설사는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이 투입될 수 있는 보수 비용을 회피하거나 미루고 본다. 이정은 법무법인 해강 수석변호사는 “하심위 판정은 법원 판결에 비해 강제력(집행력)이 약하다는 실질적인 문제가 있다”며 “분쟁 조정이나 합의 같은 절차는 구제수단이 직접적이지 않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6곳 건설사 하자소송 5000억 대 

하심위라는 행정적 경로가 제 기능을 못 해 하자 분쟁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드는 법원 소송으로 비화한다. 부산 모 아파트 관리사무소장 B씨는 “공용부분과 전유부분 모두 하자가 너무 많아 건설사에 해결해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으나 시간만 끌었다”며 “결국 법무법인을 선임해 하자소송을 진행했고 승소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올해 반기보고서를 보면 대우, 현대, 현대엔지니어링, DL이앤씨, GS, 롯데 등 주요 건설사 및 계열사에 걸린 가액 20억 원 이상의 하자소송은 총 141건으로 청구액은 5335억 원에 달한다. GS건설이 41건의 가장 많은 소송을 안고 있으며 소송가액도 1964억 원으로 가장 컸다. 소송가액 최대는 강원 모 아파트가 DL이앤씨에 청구한 하자보수 소송 138억 원짜리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소송 자료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건설사로서는 기초적인 범위는 처리해주되 분쟁 발생 시 차라리 소송을 통해 법원 판결을 받는 것이 깔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건설사는 입주민의 요구대로 하자를 모두 인정하고 처리할 경우 하자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나 하자의 보수 범위 등에 대한 분쟁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준연 태영건설 CS팀장은 최근 건축시공학회지 논문을 통해 “아파트 소유자들은 많은 판결금을 기대하고 소송에 나서지만 민사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 많은 시일이 걸리고 판결금 만족도는 35% 정도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공사는 소송 진행 중 하자보수를 해주지 않아 80% 가까운 입주자들이 불편하다고 했다”면서 “시공사가 품질 및 설계, 하자 관리 시스템의 방향성을 보완・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 부동산 전문가는 “하자 소송은 양측 모두에게 시간과 비용, 심리적 소모를 유발하는 최후의 수단”이라며 “적절한 보수 및 사전 합의를 위해 건설사가 하자보수 CS조직을 강화하고 투명한 정보공유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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