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형필의 판례탐구]
집합건물의 관리단 운영에서 핵심적인 쟁점은 ‘누가, 어떤 안건으로, 어떻게 관리단집회를 소집할 수 있는가’ 입니다. 이는 구분소유자들의 자치권과 관리의 공정성을 동시에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입니다. 최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이 내린 관리단집회소집허가 결정은 이러한 원칙을 구체적으로 확인한 사례로, 집합건물법 제33조 제2항과 제3항이 실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번 사건의 대상은 경기 시흥시 소재 한 집합건물 관리단으로, 전체 구분소유자 204명 중 일부 구분소유자들이 관리인에게 임시관리단 집회 소집을 청구했으나, 관리인이 이를 일부 변경하거나 제외해 자체적으로 집회를 소집한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신청인들은 관리인이 소집한 집회와 자신들이 청구한 집회의 안건이 실질적으로 동일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법원에 직접 소집허가를 신청했습니다. 반면 관리인은 이미 동일한 안건으로 집회가 열려 부결됐으므로 새로운 집회는 불필요하다고 다퉜습니다.
법원은 우선 집합건물법 제33조의 요건을 엄격히 확인했습니다. 구분소유자의 5분의 1 이상이 회의 목적사항을 명확히 밝혀 관리인에게 집회 소집을 청구하고, 관리인이 정해진 기간 내에 소집하지 않을 경우 법원의 허가를 받아 직접 소집할 수 있다는 규정입니다. 이 요건은 단지 형식적 요건이 아니라 구분소유자들의 공동의사 형성과 대표성 확보를 위한 실질적 조건으로 해석됩니다. 따라서 법원은 소집을 청구하지 않은 신청인이나 이미 구분소유자 지위를 상실한 자의 신청은 부적법하다고 보고, 그들의 신청을 각하했습니다. 즉, 소집을 요구한 ‘동일한 구분소유자 집단’이 일정 시점까지 그 자격을 유지해야만 비송절차의 신청인으로서 적격이 인정된다는 원칙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그다음 법원은 이 사건의 핵심인 ‘안건의 동일성 여부’를 면밀히 검토했습니다. 관리인은 신청인들이 제시한 세 가지 안건 중 일부를 변경하거나 제외해 집회를 소집했는데, 법원은 이러한 조정이 단순한 문구 수정이 아니라 본질적인 내용 변경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첫째 ‘관리단의 업무집행 관련 외부회계감사 및 민·형사적 처리의 건’에서 관리인이 ‘민형사적 처리’ 부분을 삭제하고 회계감사만 남긴 것은 단순한 축약이 아니라 신청인들이 의도한 ‘관리인에 대한 법적 책임 추궁’이라는 본질을 훼손한 것으로 봤습니다. 둘째 ‘관리인 해임 및 선임의 건’을 ‘관리인 해임의 건’으로 변경한 부분 역시 문제 삼았습니다. 기존 관리인의 해임과 동시에 새로운 관리인을 선임하는 것은 관리의 공백을 방지하기 위한 통상적 결의형태며, 단순한 해임안건으로 대체하는 것은 동일한 안건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 ‘임원(관리위원) 해임 및 선임의 건’을 제외한 관리인의 행위도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봤습니다. 법원은 비록 관리규약이 아직 제정되지 않았더라도 관리단 집회가 관리위원에게 준하는 역할을 부여하는 결의를 할 수 있고, 장차 규약 제정 시 그 지위를 제도적으로 확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관리인이 이를 임의로 제외한 것은 신청인들의 의사를 실질적으로 왜곡한 것으로 봤습니다.
결국 법원은 관리인 소집 집회와 신청인들이 요구한 집회가 실질적으로 동일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관리인 주도의 집회가 열려 6명만 참석하고 모든 안건이 부결됐더라도 그것이 신청인들의 집회청구 목적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본 것입니다. 관리인의 집회는 신청인들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별개의 집회며, 따라서 신청인들의 소집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논리입니다. 형식적 동일성이 아니라 ‘실질적 동일성’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를 재확인한 것입니다.
이 결정은 관리단 집회 절차에서 관리인의 중립성과 구분소유자 의사 존중 원칙을 동시에 강조한 판례입니다. 관리인은 집회의 소집권을 가진 자지만 동시에 구분소유자들의 집합적 의사를 반영하는 의무를 지닌 자입니다. 따라서 관리인이 자의적으로 안건을 수정하거나 제외할 경우, 이는 구분소유자들의 의사결정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법원은 바로 그 점에서 관리인의 소집권 행사를 제한하고, 구분소유자들의 직접적 소집권을 보장하는 법리적 근거를 마련한 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