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형필의 판례탐구]

권형필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권형필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최근 대법원이 선고한 방화문 관련 판결은 공동주택 하자소송의 현장에서 매우 중요한 법리를 정립한 결정으로 평가됩니다. 이 판결은 방화문이라는 건축자재의 특성과 그 성능기준의 법적 의미를 정밀하게 해석하면서 건축법령이 요구하는 ‘양면의 비차열 성능 확보’라는 안전기준의 본질적 목적을 명확히 했습니다. 

사건의 쟁점은 아파트의 계단실과 세대 출입문에 설치된 방화문이 법령상 요구되는 내화성능을 충족하지 못했는지 여부, 그리고 그 하자율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가였습니다. 원심은 방화문의 ‘미는 면’과 ‘당기는 면’을 각각 독립된 시험체로 봐 개별적으로 합격 여부를 판정한 뒤, 합격률을 평균해 하자율을 산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세대 방화문 하자율은 75%로, 공용부분의 방화문 하자율은 50%로 평가됐습니다. 그러나 입주자대표회의는 방화문은 미는 면과 당기는 면이 일체를 이루는 구조물이므로, 어느 한쪽이라도 성능이 부족하면 전체 방화문이 불합격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며 상고했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판결은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에 관한 법령과 KS규격의 기술적 기준을 근거로, 방화문이 갖춰야 할 성능은 “한쪽 면만의 통과로 충분하지 않다”고 명시했습니다. 즉 방화문은 열과 화염, 연기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구조물로서, 미는 면과 당기는 면 모두 동일한 수준의 비차열 성능을 확보해야 하며, 어느 한쪽이라도 기준에 미달할 경우 그 자체로 하자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방화문이 건축물의 ‘피난 안전’이라는 공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설비라는 점에서, 단순히 시험대상의 우연한 조합이나 샘플링 방식에 따라 하자 여부가 달라질 수 없다는 원칙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대법원은 하자율 산정의 구체적 방법까지 제시했습니다. 법원은 “양면 모두 성능을 갖추지 못한 경우뿐 아니라 어느 한 면만 부족한 경우에도 하자로 본다”는 전제 아래, 보다 합리적인 산정방식으로 “각 면의 합격률을 곱해 양면 모두 합격할 확률을 구하고, 이를 100%에서 제외하는 방식”을 제시했습니다. 이 계산식에 따르면 계단실 방화문의 하자율은 75%, 세대 방화문의 하자율은 100%로 산정됩니다. 이는 시험체의 구성 방식이나 표본 수에 따라 결과가 임의적으로 변하는 기존의 단순 세트별 판정방식보다 훨씬 합리적이며, 건축물의 안전성을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접근이라고 평가됩니다. 결국 대법원은 원심판결 중 방화문 성능 부족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으로 환송했습니다.

이번 판결의 의미는 단순히 하자율 산정의 기술적 문제를 넘어 건축물 안전기준에 대한 사법적 해석의 방향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공동주택 하자소송에서 종종 문제되는 것은 ‘시험대상 샘플의 대표성’과 ‘하자율 산정방식’ 입니다. 시공사나 분양사는 제한된 표본의 시험결과를 근거로 “전체의 50%만 불합격했으니 보수비도 그 절반만 부담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반면, 입주자 측은 “표본 중 일부라도 기준 미달이면 전면 교체가 불가피하다”고 맞섭니다. 이번 판결은 그 갈등지점에서, 법원이 건축물의 본질적 안전기능을 중심에 둬 판단해야 함을 확인시킨 것입니다.

대법원은 감정인의 감정결과에 대한 법원의 존중의무, 변론재개신청의 재량 범위 등 절차적 쟁점도 원심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감정결과가 경험칙에 반하지 않는 한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기존 판례의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방화문 성능이라는 기술적 특수성에 대해서는 단순한 사실판단의 영역을 넘어 법적 해석의 문제로 봐 적극적으로 개입했습니다. 이는 대법원이 하자소송의 법리를 단순한 ‘기술적 사실분쟁’으로 한정하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공법적 가치와 연결시킨 것으로 평가됩니다.

요컨대 이번 판결은 건축물의 내화·방화 성능에 대한 판단기준을 명확히 하고, 공동주택 하자분쟁에서 방화문과 같은 안전설비의 법적 책임 범위를 확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시공사나 분양사는 이제 “일부 불합격은 전체 불합격과 같다”는 법원의 원칙을 직시해야 할 것이며, 입대의 등 관리주체 역시 감정 및 소송 단계에서 하자율 산정의 논리를 체계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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