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형필의 판례탐구]
2025년 9월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은 부동산명도단행가처분 사건에서 한 집합건물 관리단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각하하면서 소송비용을 신청인의 대표자로 표시된 A가 부담하도록 결정했습니다.
사건의 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건물의 분양사였던 B사는 준공 후 관리업무를 기존 위탁관리업체(이하 ‘채무자’)에게 위탁했고, 채무자는 건물 지하 1층 관리사무소를 점유하며 관리업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25년 5월 구분소유자 100여 명은 ‘관리규약 제정의 건, 신규 관리인 선임의 건, 위탁관리업체 변경 동의의 건(구체적인 방법은 관리인에게 위임)’을 안건으로 하는 임시관리단집회를 개최했고, 그 자리에서 A를 관리인으로 선임하고 기존 위탁관리업체를 교체하기로 결의했습니다. 회의록에는 구분소유자 총 280여 명 중 직접참석·위임장·서면결의서를 포함한 190여 명(약 68%), 의결권 총 9500㎡ 중 5600㎡(약 59%)가 찬성해 집합건물법상 구분소유자 및 의결권 과반수 요건을 충족했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었습니다. 이에 관리단은 올해 7월 A를 대표자로 해 채무자가 더 이상 관리권한이 없으므로 관리업무를 중단하고 관리사무소를 인도하라는 내용의 부동산명도단행가처분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비법인사단인 관리단이 당사자인 사건에서 대표자의 적법한 대표권 유무는 소송요건에 관한 직권조사사항이며 그 존부가 불명확할 경우 증명책임은 채권자에게 있다는 법리를 전제로 이 사건 관리단 집회의 신규 관리인 선임결의와 위탁관리업체 변경결의에 중대한 절차적 하자가 있어 무효로 보이고, 따라서 A가 관리단을 대표해 신청을 제기할 권한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법원은 채무자 측 대리인들이 관리단 집회에 앞서 전체 380여 호 중 200호 이상에 해당하는 구분소유자 또는 임차인으로부터 의결권을 위임받았다는 위임장들을 제출했음에도 관리단 측이 이들을 ‘위임장 제출기한을 넘겼다’는 이유로 전부 배제한 사실을 문제 삼았습니다. 집합건물법 시행령 제14조 제2항은 ‘서면에 의한 의결권 행사는 규약 또는 관리단 집회의 결의로 달리 정한 바가 없으면 관리단 집회의 결의 전까지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관리단이 제출기한을 임의로 정하려면 그 기한이 규약이나 관리단집회 결의에 근거함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를 입증할 아무런 자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A 측 위임장들은 기한 내 제출돼 서면 의결권 행사로 인정됐지만, 그 위임인들이 실제 구분소유자 또는 집합건물법 제24조 제4항에 따라 의결권 행사 자격이 있는 임차인인지, 또 동일인이 중복 위임한 것은 아닌지에 관한 객관적 자료 역시 제출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법원은 관리단 집회 결의는 의결권 산정이 불명확하고 절차적 요건을 위반한 중대한 하자가 있어 무효며, 그 결의에 기초한 A의 관리인 지위 역시 인정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나아가 설령 A가 적법한 관리인이라고 보더라도 채무자가 본안판결 확정 시까지 계속 관리업무를 수행할 경우 채권자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현저하고 급박한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따라서 법원은 대표권 부존재라는 소송요건 흠결뿐 아니라 보전의 필요성 요건까지 결여됐다고 판단하면서 신청을 각하하고 소송비용은 A가 부담하도록 결정했습니다.
결국 이 결정은 집합건물 관리단 분쟁에서 ‘절차적 정당성’이 ‘실체적 정의’의 전제 조건임을 다시금 확인시켜줍니다. 관리단은 향후 관리인 선임결의나 위탁관리업체 변경결의를 추진할 때 구분소유자 및 집합건물법상 자격 있는 임차인의 범위를 명확히 정하고, 의결권 위임장 제출기한을 규약이나 결의로 적법하게 설정하며, 의결권 산정표와 위임장 원본 등 객관적 자료를 철저히 확보해 대표자 적법성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절차적 요건을 무시한 채 다수의 의사만을 앞세운 결의는 결국 법정에서 인정받기 어렵고, 대표권 다툼으로 소송요건 단계에서 각하될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집합건물의 관리 분쟁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이번 결정은 관리단과 구분소유자들에게 민주적이고 투명한 절차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며, 형식적 요건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실체적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