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주의 안전한家 든든한家]

조현주 코이지 대표
조현주 코이지 대표

요즘 아파트 단지는 다양한 세대와 기술이 교차하는 복잡한 교통 공간이 됐다. 단지를 걷다 보면 휠체어나 유모차, 자전거처럼 바퀴가 있는 이동수단을 이용하는 입주민을 흔히 볼 수 있다. 장을 본 카트나 여행용 캐리어처럼 생활 속 바퀴 달린 물건들도 많다. 최근에는 전동휠체어, 전동스쿠터, 전동킥보드 등 전기를 사용하는 개인형 이동수단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많은 아파트 단지가 자동차 중심 설계에 머물러 있다. 이 때문에 보행자와 전동 이동수단 사용자의 안전은 충분히 보장되지 못한다. 산책로 곳곳이 울퉁불퉁하고 보행로가 끊기는 구간의 턱이 나올 때마다 휠체어와 유모차가 어렵게 지나가는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최근 부모님네 아파트 단지는 인도와 차도를 새로 정비했다. 단지 내 모든 보도블록을 교체하고 도로포장과 지상주차장 주차선 도색까지 하는 대규모 공사였다. 그런데 우연히 부모님 댁을 방문했다가 큰 문제점을 발견했다. 보도의 끝 경계석이 도로보다 높게 설치되고 있었던 것. 고원식 횡단보도가 설치되는 것이 아니라면 휠체어나 유모차, 자전거 이용 입주민들의 불편은 불 보듯 뻔했다. 

확인차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봤다. ‘이미 입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며 해결 방안을 논의 중’이라는 답변이었다. 부모님도 여러 차례 직접 관리사무소를 찾아 같은 우려를 전했다고 한다. 다행히 공사 마무리 전에 경계석 낮춤 작업이 반영됐고 새로 정비된 단지는 한결 안전하고 편리한 보행환경을 갖출 수 있었다. 작은 공사 하나가 입주민의 안전과 편의에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를 체감했다.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아파트 단지가 할 일이 있다. 우선 고령자와 장애인 등 보행약자를 배려한 계획과 설계가 필수다. 보행 동선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단차 없는 보도, 낮춤 경계석 등을 미리 고려해야 한다. 차량과 전동 이동수단의 속도를 관리할 물리적 장치도 필요하다. 고원식 횡단보도, 과속방지턱, 시각 유도선, 바닥 색상 구분 등이 효과적이다. 

또 공동체 차원의 교육과 규칙이 필요하다. 전동 이동수단 이용자는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보행자 우선 원칙을 지켜야 한다. 전동킥보드는 법적으로 개인형 이동장치로 분류돼 원칙적으로 보도 주행은 안 되고 차도 또는 자전거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관리사무소가 지속적으로 안내 표지판 등으로 이를 충분히 알려야 한다.

전동 이동수단이 세대 간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고령자들은 조용한 산책길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킥보드에 불안을 느낀다. 아이를 둔 부모는 운전이 미숙한 전동 휠체어나 킥보드 이용자와 충돌 위험에 민감하다. 반대로 전동 이동수단 이용자들은 단지 내에서조차 제약이 많다고 불편해한다. 결국 안전한 단지를 위해서는 시설 개선뿐 아니라 세대 간 이해와 양보, 이용 규칙의 공유가 필수적이다. 입주민이 참여하는 설명회나 캠페인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합리적인 규칙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곧 안전 문화의 토대가 될 것이다. 

지상의 차량 통행을 최소화하는 아파트가 늘고 있지만 주차장과 주민 통행로가 교차하는 구간은 어느 단지에나 존재한다. 여전히 지상주차장을 활용하는 단지들도 많다. 아파트 단지 내 도로는 차량과 전동 이동수단, 유모차, 자전거까지 얽히는 복합 교통 공간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작은 경계석 하나가 입주민의 이동권을 막고, 단차 하나가 충돌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안전은 법적 기준과 올바른 설치로 시작되지만 입주민의 목소리와 관심이 변화를 만든다. 입주민의 참여가 결국 안전한 단지를 만들 것이다. 안전한 단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조 현 주 l 한국편의증진연구원(코이지) 대표. 시니어 대상 홈케어 콘텐츠・플랫폼 개발. 저서 ‘부모님을 위한 나들이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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