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형필의 판례탐구]

권형필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권형필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최근 대구지방법원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전 관리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반환 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이 사건은 아파트 입주 이전 사업주체가 체결한 관리계약에 따라 발생한 비용 중, 실제 지출되지 않은 퇴직적립금 등을 반환해야 하는지 여부가 주요 쟁점이었으며, 결과적으로 법원은 해당 계약에 따라 관리업체가 이를 반환할 의무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원고는 대구 북구에 소재한 A아파트의 입대의고, 피고는 공동주택 관리업체인 B주식회사입니다. 이 사건의 발단은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기 전 사업주체인 시행사들이 피고와 체결한 관리계약에서 비롯됐습니다. 이 계약에 따라 피고는 아파트 입주 개시일부터 입대의 구성 전까지 단지 전체를 관리했습니다. 이후 입대의가 구성됐고, 원고는 시행사의 관리 의무를 승계한 주체로서, 피고가 실질적으로 지출하지 않은 퇴직적립금, 연차수당, 사회보험료 등의 반환을 요구하면서 소송에 이르게 됐습니다.

법원이 먼저 검토한 쟁점은 관리계약이 민법상 도급계약인지 위임계약인지 여부입니다. 계약서에는 ‘도급’이라는 용어가 다수 등장했고, 피고에게 지급된 금원도 ‘도급인건비’로 명시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계약의 실질을 기준으로 피고가 공동주택관리법상 관리주체로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 하에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점, 계약이 특정 업무의 ‘완성’이 아니라 ‘관리 수행’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 등을 종합해 계약의 실질을 ‘위임계약’으로 판단했습니다. 이는 대법원이 아파트 관리계약의 본질을 반복적으로 위임계약으로 판단해 온 판례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다음 쟁점은 위임계약의 성격을 전제로, 실제로 지출되지 않은 퇴직적립금, 연차수당적립금 등 선급비용의 귀속 문제가 핵심이 됐습니다. 민법 제687조에 따라 수임인은 위임사무 수행을 위해 선급비용을 청구할 수 있으며, 그 비용이 실제로 지출되지 않았다면 원칙적으로 위임인에게 반환해야 합니다. 그러나 본 사건의 경우 계약 제13조에 “월정액은 정산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었고, 도급인건비가 정액으로 설정돼 지급됐으며, 실제 계약기간 동안에도 일체 정산이 이뤄진 바 없었다는 점에서 법원은 “미지출 비용의 반환을 요하지 않는 특약”이 있었다고 봤습니다.

결국 법원은 계약 당사자인 시행사들과 피고 간에는 “미지출금은 정산하지 않고 피고에게 귀속시킨다”는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약정이 있었다고 판단했고, 이에 따라 피고는 퇴직적립금 등 미지출 비용을 반환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원고는 관리개시 전 인력 투입 명목으로 지급된 사전투입비 105만 원 상당과 직원들의 각종 수당(주말근무수당, 명절격려비, 시간외근무수당 등 포함 총 1635만 원)의 반환도 청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해당 금액들이 모두 피고가 아닌 개별 직원에게 직접 지급됐고, 피고가 이를 수취한 증거가 없다는 점에서 부당이득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나아가 피고의 계약상 수당 정산의무는 사업주체와 협의를 전제로 했는데, 협의의 부재 여부, 수당 발생의 불가피성 등에 관한 원고의 입증도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번 판결은 위임계약에 있어서의 선급비용 귀속 문제, 특히 퇴직적립금 등 불확정적 비용 항목의 반환 여부에 관해 중요한 판단을 제시합니다. 관리계약이 위임계약이라 하더라도 계약서에 정액지급 방식이 명시되고 “정산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존재한다면 그 범위 내 미지출금에 대해서는 수임인이 반환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실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시사점이 있습니다. 첫째, 관리계약을 체결할 때는 정산 대상 항목과 정액 항목을 명확히 구분하고, 정산 유무에 관한 조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입대의가 사업주체로부터 관리계약을 승계하는 경우, 계약 조항에 따라 불리한 조건까지도 승계되는 결과를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셋째, 관리업체의 비용 수령과 관련된 부당이득 주장은 그 지급 주체와 귀속 주체가 명확히 일치하지 않으면 성립이 어렵습니다.

본 사건은 ‘도급’이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실질을 위임계약으로 봤으며, 그에 따라 퇴직적립금 등의 반환 문제를 계약 조항의 해석을 통해 판단했습니다. 계약서의 문구 하나하나가 분쟁의 결과를 결정짓는 현실에서, 입대의든 관리업체든 계약 체결 시 면밀한 검토와 대비가 요구됩니다. 위임계약이더라도 실질적 비용귀속의 약정이 존재할 경우 반환청구는 인정되지 않으며, 부당이득으로 보기 위한 입증 역시 단순한 비용 발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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