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주의 안전한家 든든한家]
지인으로부터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매일 욕조에 물을 받아 반신욕을 즐겨하던 남편이 시간이 한참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문을 열어 확인했더니 잠이 든 것처럼 보여 얼른 나오라고 말하고는 문을 닫고 나왔는데, 시간이 지나 이상함을 느껴 다시 들어가 보니 회생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지인의 남편은 80대를 바라보는 나이였다.
현대사회에서 아파트는 편리한 생활을 제공한다. 아파트의 보급으로 남녀노소 모두 반겼던 것이 집 안에서 목욕할 수 있는 욕실이었을 것이다. 매번 대중목욕탕을 다녀와야 하는 불편함이 개선됐으니 말이다. 나의 할아버지는 80대 중반부터 주기적으로 다니던 동네 목욕탕으로부터 출입 금지를 당하셨다. 안전상의 이유로 노인 혼자 목욕이 어려우니 반드시 보호자와 동행하라는 것이었다. 자녀들이 돌아가며 동행했으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댁에 욕조를 들이느냐를 두고 많이 고민했는데 여러 문제로 설치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보행이 힘든 할아버지의 욕조를 넘나드는 행위 자체가 위험하다는 판단이었다.
노인이 욕조를 이용해 목욕하는 것이 마냥 편리하고 좋은 것은 아니다. 물기, 증기 등 습기가 있는 상태에서 욕실 바닥은 늘 미끄러울 수밖에 없어 넘어질 위험이 크다. 일반적인 욕조는 그 안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발이 걸린다거나 무릎이 욕조 턱에 부딪히는 식이다. 욕조가 크고 넓으면 물이 많이 담기니까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위험한 생각이다. 노인이든 아이든 욕조에서의 익사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목욕 중 흔히 일어나는 또 다른 사고는 뜨거운 물로 인한 화상이다. 노인의 피부는 얇고 감각이 둔하다. 뜨거운 물의 온도를 제대로 느끼지 못할 수 있다는 것. 당뇨병을 앓고 있는 경우 온도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해 저온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게다가 뜨거운 물은 혈압을 급격히 변화시킬 수 있어 심혈관에 부담을 줄 수 있다. 고혈압이나 심장 질환이 있는 노인은 목욕 중 주의가 필요한데 피로가 풀리는 편안함을 느끼면서 노곤하게 잠이 드는 것을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30분 이상 오랜 시간 고온에서 목욕하면 심혈관에 무리가 되는 것은 물론 피부를 더욱 건조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목욕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미끄럼 방지 조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욕실 바닥과 욕조 안에 미끄럼 방지 테이프를 붙여두는 게 좋다. 또 욕조에 물을 채울 때는 반드시 37~40℃ 사이의 적절한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온수가 나오는 토수구에 신체가 직접적으로 닿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하며 너무 많은 양의 물을 채우지 않도록 한다. 평소 심혈관 등에 문제가 있거나 다른 지병이 있다면 혼자 목욕하는 것을 피하고 보호자를 불러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두는 것이 좋다.
욕조에 접근하는 방법이나 구조만 변경해도 안전성이 크게 향상된다. 욕조로 접근하는 동선에 안전 손잡이를 설치해 몸을 지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거나 욕조 끝에 걸터앉은 채로 몸을 돌려 욕조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생활화한다. 간혹 욕조 입구에 계단 형태의 턱을 만들어 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때는 계단 턱 모서리에 부딪힘 방지 조치를 하고 욕조를 출입할 때 반드시 몸을 지지할 수 있도록 벽을 짚거나 무게중심을 낮춰서 이동하는 것이 안전하다.
안전한 목욕을 위해 만들어진 신개념 욕조들도 많이 출시되고 있다. 저상 욕조는 일반 욕조보다 높이가 낮아 쉽게 드나들기가 훨씬 수월하다. 채울 수 있는 물의 양도 적어 물에 빠질 위험이 적다. 워크인 욕조는 욕조에 문이 달린 형태로 욕조의 한쪽 면이 열린다. 욕조 턱을 넘나들지 않고 출입할 수 있는 것이 장점. 이 때문에 노인, 장애인 등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에게 유용하다.
아파트 욕실에서 욕조 사용 시 앞서 안내한 여러 가지 위험 요인에 대한 인식과 예방이 필요하다. 욕실 환경을 안전하게 조성하고 올바른 접근 방법을 익히며 적절한 욕조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 현 주 l 한국편의증진연구원(코이지) 대표. 시니어 대상 홈케어 콘텐츠・플랫폼 개발. 저서 ‘부모님을 위한 나들이 안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