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에 아파트 단지에서 산책하다 보면 겨울 공기를 따듯하게 데우는 한낮의 포근한 광경을 종종 목격한다. 어린이 놀이터에 마련된 벤치나 평상 그늘막 주위에 어르신들이 데리고 나온 반려견 곁으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다. 지팡이를 짚거나 휠체어에 앉아 보호자와 함께 나온 어르신도 계신다. 아이들과 함께 나온 젊은 부모들도 여유 있는 얼굴로 서로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조금 낯설면서도 익숙한 광경이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2월 기준 한국이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고 밝혔다. 초고령사회는 65세 이상 고령자가 인구의 20% 즉,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인 사회를 말한다. 2025년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라는 통계청의 예상보다 1년 빨랐다. 인구 14%가 고령자인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의 전환은 불과 7년 4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영국은 50년, 프랑스는 39년이 걸렸다. 이미 초고령사회로 이미지가 굳어진 일본도 10년이 걸린 것에 비해 한국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인구 구조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정부의 예상보다도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에 비해 우리 사회는 아직 노인 인구와 더불어 살아갈 사회적, 경제적 대비가 여전히 부족하다. 홀로 사는 노인이 급증하면서 이들에 대한 신체적, 정서적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은 여러 안전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중 가장 위험한 상황이 주거 공간 내에서 낙상을 당하거나 질병 등으로 응급 상황에 부닥쳤을 때 바로 발견이 되지 못해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정서적·심리적 문제도 존재한다. 혼자 사는 노인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외로움과 우울증이라고 한다. 심리적으로 외로움을 느끼면 생활 안정성을 해치고 자신을 더욱 취약한 상태로 만들 수 있다. 사회적 고립은 노인들이 외부와의 연결을 끊고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우려를 해결하기 위해 아파트 차원에서 여러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안전한 주거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아파트 각 세대 내에 미끄럼 방지 매트나 손잡이 등 안전장치를 설치하도록 권장한다. 가능하다면 고령자 세대에 필요한 안전 편의 시설물을 설치할 수 있는 관리 인력을 확보한다. 공용공간에도 이동 시 위험 요소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계단이나 경사로에 미끄럼 방지 바닥재, 손잡이 설치, 충분한 조명 등 낙상 예방을 위한 시설을 갖추는 것이다. 아파트 내 산책로나 입주민이 자주 모이는 공간에는 의자 등 휴식 공간을 둬 편의성을 높일 수 있다.
둘째, 응급 상황 대응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가까운 세대 간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면 좋겠지만 이웃과의 교류가 어려운 현대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IT 기술을 도입해 노인들이 세대 내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응급 호출 장치를 설치할 수 있다. 또 스마트폰을 활용한 긴급 연락망을 구축해 응급 상황 발생 시 즉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각 세대에서 자체적으로 응급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나 아파트 단지 단위로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셋째, 사회적 지원 체계 강화가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도 살던 곳에서 지낼 수 있으려면 지역 사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각 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자원봉사자나 사회복지사들이 정기적으로 노인을 방문하고 안부를 확인하는 프로그램이 지역별로 이미 많이 시행돼 효과를 보고 있다. 또 아파트에서 이웃과 교류할 수 있도록 만남의 기회를 정기적으로 만들어 준다.
넷째, 정서적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노인들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전 세대가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이들이 사회적 연결을 강화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노인도 마찬가지다. 노인들이 자존감을 지키고 스스로 건강하게 잘 살아가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사회적으로나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건강한 노후생활은 개인의 행복뿐 아니라 미래세대의 재정 부담과도 연결돼 있기도 하다. 세대 간의 갈등 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초고령사회에서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조 현 주 l 한국편의증진연구원(코이지) 대표. 시니어 대상 홈케어 콘텐츠・플랫폼 개발. 저서 ‘부모님을 위한 나들이 안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