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민  변호사 /국토교통부 국토안전관리원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 사무국
박형민 변호사 /국토교통부 국토안전관리원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 사무국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는 공동주택관리법 제39조에 의거해 하자심사, 분쟁조정, 분쟁재정을 수행한다. 지난해 12월 9일부터 시행 중인 ‘분쟁재정’에 관한 문의가 최근 꾸준하다. 제도 시행 반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본 제도의 특징을 살펴본다. 분쟁조정과 분쟁재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의 선택에 도움이 될 의견을 전한다.

분쟁 해결 수단 중 가장 강제적인 것은 소송일 것이다. 반면 자주적인 분쟁 해결 수단으로서 분쟁조정이 있다. 그 중간의 어딘가에 분쟁재정이 자리하고 있다. 재정(裁定)의 ‘재’는 결단하다, 분별하다는 의미로 재판(裁判)의 ‘재’와 같다. 

분쟁재정은 위원회가 준사법절차에 따라 인과관계의 유무 및 손해액 등에 관한 법률적 판단을 내려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다. 신청인과 피신청인 간의 다툼에 관해 전문성을 갖춘 위원회가 판정을 내린다. 

하자보수가 불가능해 공동주택관리법 제37조 제2항 손해배상으로 다퉈야 하거나 인과관계 판단이 필요한 경우 등에 분쟁재정 제도는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소송보다 경제적이고 신속하며 탄력적인 진행 절차를 통해 유연하고 합리적인 해결방안이 기대되는 것이다.

분쟁조정과 비교해 살펴보면 분쟁재정을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분쟁재정 신청비용은 2만 원이다. 분쟁조정 신청비용 1만 원의 2배다. 분쟁재정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며 모두에게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2배 더 신중하게 신청하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분쟁조정에 있어 당사자들은 협조를 요청받는다. 그러나 출석의무나 문서제출 의무는 없다. 위원회는 판정에 필요한 관련 문서 제출을 여러 차례 요청하지만 자료 수집에 한계를 느낀다. 협조가 잘되지 않으면 사건처리는 지연될 수밖에 없다. 

분쟁재정 과정을 살펴보자. 당사자 심문, 당사자 및 참고인 조사, 관련 문서·물건 조사, 사실조사 등 재판에 준하는 절차가 마련돼 있다. 이 과정에서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기 위한 제재 수단이 도입돼 있다. 답변서 미제출, 불출석 및 거짓진술, 미제출 및 거짓제출에 대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이는 재정절차를 충실하게 운영하기 위한 보조적 수단이다. 부득이한 불출석 등에 과태료 부과를 우려해 재정신청 자체를 꺼릴 필요는 없다. 

분쟁조정은 합의를 바탕으로 한 제도다. 위원회가 제시하는 조정안을 쌍방이나 일방이 거부하면 결렬되고 조정안은 효력을 잃는다. 조정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수락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분쟁재정은 다르다. 재정서의 효력은 소송제기라는 적극적 행위를 반드시 해야만 상실시킬 수 있다. 재정서를 송달받은 당사자 양쪽 또는 어느 한쪽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60일이 도과하면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발생한다. 

재판상 화해는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그래서 분쟁재정 위원회의 의사 정족수는 분쟁조정보다 강화돼 있다. 5인이 전원 출석해야 하고 법조인 1인이 꼭 포함된다. 신중한 절차를 전제했기에 분쟁재정의 재정서가 보수방법이나 그 범위까지 결정하는 등 강력한 효력을 갖는다. 

그렇다면 분쟁재정이 분쟁조정보다 좋은 제도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재정제도는 양날의 칼과 같다. 준사법절차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신청인이 절차에 충실히 참여하고 주어진 권리를 적극 행사한다면 최적의 제도일 수 있다. 

법정 드라마의 원고와 피고가 치열하게 법리 쟁점과 증거 채택 등을 다투는 모습을 떠올려 보자. 이때 주인공은 재판부가 아닌 원고와 피고다. 분쟁재정도 마찬가지다. 당사자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절차 참여를 가벼이 하고 막연한 기대만 가지고 임한다면 바라던 결과를 얻기 힘들 수 있다.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재정서를 교부받고, 애초에 원하지도 않았던 소송제기까지 강요받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그래서 당부한다. 신청인이 분쟁재정을 고려할 때는 적극적으로 절차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지녀야 한다. 당사자 심문, 참고인 조사, 관련문서 제출, 사실조사 등 절차마다 당사자로서 적극적으로 임해야 함은 물론이다. 분쟁재정은 신청인·피신청인·위원회가 함께 만드는 제도다. 

위원회는 분쟁재정 제도가 조속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운영지침 및 매뉴얼을 마련하고 숙련 조사관과 법률 전문가가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과 법령 해석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분쟁재정의 바탕이 될 명확하고 공정한 기준들도 차차 축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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