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들의 기도

詩가 있는 풍경

2019-08-28     夏 林/안병석

바람 앞에 서면 작아지는 미루나무와
폭우 앞에 몸집이 커지는 강물은 친구다
살아오는 동안 강둑만 친구 삼은 풀들은
양들의 혀를 기억하는 기도를 한다
낮은 음성이 하늘에 닿을까마는
몸짓만은 간절하다
퍼붓는 빗줄기를 맞으며 산들이 울음일 때 
풀은 한 조각의 빵도 입에 넣지 못했다
지상을 지배하는 것들은 다 장마였으므로

편의점 옆 백반집을 나서며
지폐 몇 장 건네는 인부들
그들이 지불한 지폐는 술과 밥과 이쑤시개의 값
장마로 여러 날 쉬었거나
한두 끼쯤 건너뛰었겠으나
그들의 기도문은 못과 망치와
철근 더미의 먼지를 터는 일

강둑의 풀들
간절한 기도는 마침내 장마를 쓸어내고
햇볕과 양 떼를 불러모았다
해는 퀴퀴한 냄새에 코를 쥐었겠으나
양들은 제 몸의 체온으로 빚은 환약을
아낌없이 쏟아 풀들에 지불했다
제 똥도 누군가에게 밥이 되는 이 거룩한 기도
혀 밑에 뜯어 심키는 풀잎이 양들에겐
인부들이 허기를 채우던 술이고 밥이다

강둑만 고집하던 풀들의 기도는 
산의 울음을 재우거나 
나무와 강물은 다시 친구가 되었다
풀들의 저녁은 이쑤시개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