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하나] 누구 못지않은 지능과 열정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젊은 시절 직장에 다닐 때는 뛰어난 순발력으로 입사 동기들을 제치고 늘 앞서 나가며 남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하지만 세월은 어쩔 수 없는지 나이도 먹고 뒤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밀리고 회사의 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명퇴를 했다. 한동안 아내와 여행도 하고 휴식을 취했지만, 아직 나이도 있고 하릴없이 퇴직금만 까먹고 있을 수 없어 친구의 소개로 프랜차이즈 업체에 가입해 자영업을 시작했으나 광고와 달리 벌이도 시원찮고 결국 적잖은 돈만 까먹고 접었다. 우연히 TV를 보다가 주택관리사 자격을 알게 됐고, 나이 먹어서 공부한다는 것이 남사스럽기도 하고 머리도 굳어서 힘들긴 했지만 왕년의 기억력과 머리가 완전히 망가지진 않은 덕에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만 따면 바로 관리사무소장으로 나갈 줄 알았는데, 이런 제길 이거 장난이 아니다. 주택관리사 자격증 가지고 소장은 고사하고, 남의 집 변기를 뚫어주네 마네 하는 아파트 기사 자리도 얻기 힘드니 “아, 내가 이러려고 자격증을 땄나?” 하는 자괴감이 물밀듯이 전두엽을 강타한다. 뭔 놈의 주택관리사가 이렇게 차고 넘치는지 짜증만 난다.

아파트 소장이 뭐라고, 예전 같으면 거들떠도 안볼 그깟 허접스러운 직업에 목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이해가 안 간다.

[경험 둘]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꾸 겁이 났다. 선배들을 봐도 아직 충분히 일할 나이인데도 회사에서 노골적으로 나가달라는 압력을 받는 것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들어갈 돈은 많아지고 모아놓은 돈은 없으니 오래도록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데 걱정이 자꾸 많아졌다. 관리사무소에서 기사로 근무하는 친구가 주택관리사 얘기를 해줘서 한번 도전해봤다. 

퇴근 후 매일 2시간 이상을 공부하고 매주 휴일을 도서관에서 살며, 꼬박 1년을 공부했으나 첫 번째 시험에 낙방하고, 이듬해 어렵사리 자격을 취득했다. 자격을 취득하고 친구의 소개로 시설기사로 입사해서 2년 동안 일을 배우고 지금은 조그만 단지의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월급도 그다지 많지 않고,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입주민이나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오래도록 남아서 일해 달라는 얘기를 들을 때는 보람도 느끼고, 어려움은 있었지만 내가 했던 선택에 고마움을 느끼고 만족하고 있다. 세상에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선택한 일에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주택관리사 A씨] 50대 초반에 20여 년 다니던 직장을 구조조정으로 그만두고 나와서 주택관리사 시험을 치르고 공채를 시행하는 곳이 있기에 그냥 시험 삼아 이력서를 넣었더니 덜컥 합격했다. 두어 달 지나 작은 아파트에 발령이 나서, 급여도 적고 출퇴근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3년쯤 열심히 일하다가 주택관리사가 되자 1,000세대가 넘는 대단지로 옮겨갔다. 예전 회사에는 못 미치지만 보수도 만족스럽고 3년째 잘 다니고 있다.

[주택관리사 B씨] 40대 후반에 주택관리사보 자격증을 땄지만 이력서를 넣어도 아파트 경력이 없다고 쳐다도 안 본다. 자격증 있는 것을 숨기고 어렵사리 시설기사로 들어갔으나 월급도 쥐꼬리 만하고 아파트 한 채 가진 것이 무슨 벼슬이라고 몰상식한 인간들이 갑질하는 꼴이 더러워서 그만두고 나와서, 대출받아서 장사한다고 나섰다가 빚만 잔뜩 지고 정말 죽을 맛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주택관리사 자격증,  공부한 시간이 아깝고 누가 공부한다면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면서 말리고 싶은 심정이다.

A씨에게 주택관리사 자격이 갖는 의미를 물으면 뭐라고 할까? B씨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면 어떤 답변이 나올까? A씨 처럼 되라고, 또는 B씨가 현실적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세상에는 넓고 포장된 길만 있는 것도 아니며 비포장도로에 진흙탕만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비포장 길이라면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포장해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는 것이다. 내가 가야 할 길을 포장된 넓은 길로 만드는 것은 결국 내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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