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학습을 마치고 본격적인 실기학습에 들어가던 U에게 난관이 찾아왔다. 
1단계 접점번호를 정확히 기재하고 나서 2단계 제어반을 만들고 그것을 토대로 3단계 배관작업을 해야 하는데, U는 어쩐지 1단계인 접점번호 쓰는 것부터 계속 틀리고 있었다. 1단계 작업에 오류가 있다면 2단계, 3단계 작업에 애쓴다한들 말짱 도루묵이 되는 게 실기시험의 특성인지라 앞 단계의 실수는 불합격이라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실기시험은 작업형이라 반복해서 준비하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필기 못지않게 커다란 장벽 앞에 선 기분이었다.
하지만, 예서 말수는 없는 법!
시험시간 세 시간 반 동안의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주문했다. 예컨대 1단계 학습을 마무리 짓고 나면 산책 등 가벼운 운동으로 체력적인 부분을 소홀하지 않도록 했다. 그런 결과인지 완벽하게 1단계를 마무리 지었고, 집중력도 전에 비해 크게 나아졌다.
시험날짜가 다가오자 나는 주중에도 그의 집으로 퇴근해 U가 만들어놓은 작품(?)을 꼼꼼하게 검사했고, 틀린 부분은 다시 틀리지 않도록 하나씩 차근차근 잡아나갔다. 
그리고 시험날. 저녁 무렵 U에게 전화로 물어보니 문제가 잘못 나온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전국 여러 수험장에서 오류를 수정하라는 지시가 있었을 텐데. 아뿔싸, 그의 눈엔 문제가 잘못 보였었나 보다. 어느 누군들 시험장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실패를 뒤로하고 두 번째 시험에서 보란 듯이 합격했고, 학원에서 같이 공부한 열댓 명의 동기생들에게 부러움을 사는 것은 물론, 자격증을 포기했던 다른 수강생들도 다시 시작하겠다는 등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었다.
다시 하나의 고비가 남아 있었다. 바늘구멍같이 좁디좁은 취업의 문을 통과해 애써 이룬 절반의 결실을 완성해야 했다. 하지만 취업이 어디 호락호락하던가.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이력서를 들고 구인 공고를 냈던 업체들을 찾아 바삐 기웃거렸지만, 메아리 없는 울림처럼 공허한 일의 연속이었다. 
그러길 달포쯤 지났을까? 뜻밖의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소장님 취업했습니다!”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으랴. U는 쉬운 경비직에는 아예 눈길 한번 주지도 않더니 급기야 전기 자격증을 제대로 써먹을 곳을 찾은 것이다. 
U의 말을 옮기자면, 취업한 캠핑카업체의 사장이 그 나이에 어떻게 전기를 땄냐며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였단다. 암튼  자신의 힘으로 취업에 당당하게 성공해 멋진 인생 2막을 열어가고 있으니 가르쳤던 나로서는 더없는 보람이요, 행복이 아닐 수 없다.
가르침은 또 다른 배움이다. 추운 겨울을 지나 자연이 손짓하던 따스한 봄에도 난 U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한여름 소나기를 맞으면서도 룰루랄라 산꼭대기 그의 집을 찾고 있었다. 그렇다. 가르침을 통해 배웠고, 재능기부를 통해 보람을 얻었으며, 즐거움은 덤으로 주웠다. 
며칠 전, 퇴직한 선배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기기능사 필기는 나 혼자 공부할 테니 실기 좀 가르쳐 주면 안 될까?”라고. 즐거운 손짓이다. 어찌 알았을까? 내가 슬기로운 기부 생활을 즐기고 있는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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