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져라


이번 겨울 서해안과 호남지역의 폭설에 때를 맞추어 ‘건축물관리자 제설 및 제빙책임에 대한 조례(안)(이하 제설 등 조례(안))’ 제정이 전국적으로 확산돼 각 지자체별로 추진 중에 있다.
이 제설 등 조례(안)은 자연재해대책법에 의거해 설해로 인한 주민들의 생활불편과 통행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건축물관리자의 구체적인 제설, 제빙 책임범위 등의 규정을 새로이 한다는 제정 취지 아래 각 지자체별로 그 내용이 거의 대동소이하다.
그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건축물관리자를 건축물의 소유자, 점유자 또는 관리자로서 그 건축물의 관리책임이 있는 자로 용어를 정의하고 있고 이 건축물관리자는 건축물의 대지에 접한 보도의 전체 구간과 건축물의 대지에 접한 도로의 중앙선 또는 중앙부분까지의 이면도로 및 보행자전용도로 구간에 대해 제설 제빙을 하도록 돼 있다.
특히 제설 등의 작업시기를 눈이 그친 때로부터 3∼4시간 이내에 완료하도록 하고 있고 야간에 눈이 내린 경우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제설 등의 작업을 완료하도록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제설 등의 작업 때 뿌려진 재료나 모래 등은 눈이나 얼음이 녹은 후 뿌려진 모래 등을 제거해 도로를 깨끗하게 하도록 하고 있다.
각 지자체 별로 제안된 제설 등 조례(안) 내용을 조목별로 읽다보니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집단 거주형태를 띠고 있는 아파트가 직접적인 연관이 많은데 공무원들이 공동주택의 실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폭설 또는 도로 결빙 시 도로의 유지와 관리에서 아예 손을 떼고 건축물관리자에게 떠맡기겠다는 발상이 아닌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고 한마디로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의 극치요, 자연재해의 뒤처리와 책임 자체를 건축물관리자에게 통째로 떠넘기겠다는 무책임한 행정의 발상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도로는 도로법상 국가나 지자체가 유지 보수하고 관리하게 돼 있다. 그런데 도로의 유지와 관리를 건축물관리자와 주민들에게 떠넘기겠다는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제설 등의 작업지연에 따라 발생될 민원과 차량이나 각종 안전사고 발생에 따른 민사적인 분쟁까지도 주민들에게 전가시키는 무책임한 발상을 하고 있다.
지난해 이곳 울산에도 70여년 만에 폭설이 내려 아파트 관리사무소마다 제설작업을 하느라 진땀을 뺀 적이 있다. 세대수가 700여 세대인 울산 북구 P아파트의 경우 관리직원과 경비원, 미화원 총 15명은 요통과 근육통을 호소하며 단지 내 제설작업을 완료하는데 일주일이란 기간이 소요됐다. 그 기간 동안 주민들의 참여 인원은 총 10명이 넘지 못했다. 주민들이 생업에 바쁜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것은 이기적인 공동주택 거주자들의 한 단면으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단지 내 제설작업을 하는데 1주일이나 소요됐는데 단지 밖 도로의 제설작업까지 눈이 그친 후 3∼4시간 안에 완료하라니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공무원들의 짧은 생각에 한숨만 나온다. 대부분의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최소한의 인원과 턱없이 부족한 장비로 아파트 단지 내 제설 작업을 하기에도 벅찬데 국가나 지자체가 책임져야할 단지 밖 보도와 도로까지 맡아 하라는 이런 억지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단 말인가?
이것은 비단 공동주택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핵가족화가 날로 심해져 가는 요즘 단독주택에도 노인들만 사는 가구가 많다. 그 노인네들은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데 눈이 그친 후 3∼4시간 만에 과연 제설작업을 완료할 것으로 보고 있는지? 공무원들에게 되묻고 싶다. 이러한 전후 사정 때문에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12월 13일 제설 등의 조례(안)을 부결시켰을 것이다.
그래서 정부와 지자체에 당부하고 싶다. 공무원들은 제발 아파트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보고 피부로 느끼면서 좀 더 현실에 맞는 제대로 된 행정과 정책을 펼쳐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국민 60% 이상이 거주하는 공동주택의 실정은 어느 누구보다도 국가공인자격자인 주택관리사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다.
공동주택 관리와 연관된 정책 수립과 결정은 반드시 주택관리사들의 단체인 대한주택관리사협회와 협의해 줄 것을 바란다. 정부는 이제 더 이상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심리적, 물질적 부담을 주지 말아줄 것을 당부한다. 국가와 지자체가 본연의 책무를 다할 때 국민들이 편안히 생업에 종사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 갈 수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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