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이 문제냐, 시스템이 문제냐

기고 김호열l승인2020.02.05 09:40:34l11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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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열  주택관리사

 

필자가 오래 전에 근무했던 자치관리 아파트에서 경리직원이 부정을 저지르고 있었다. 필자는 이를 눈치 채고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에게 보고했으나 회장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오히려 관리사무소장의 문제점을 더 크게 부각해 쫓겨난 적이 있다. 
경리직원은 오래됐고 소장은 초임이어서 정치싸움에서 밀렸던 것 같다. 
그 후 오피스텔에 근무할 때 경리직원이 부정을 저지르는 걸 적발해 이를 바로잡는 데 고생한 적도 있다. 
최근 서울 모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해 공동주택 관리업계가 시끄럽다. 더욱 충격이 큰 것은 두 사람이나 자살했다는 사실이다.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대부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라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렇게 엄청난 일은 예측 불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죽기 전에 ‘내가 왜 그랬을까?’라고 생각했을까? 어쨌든 자살한다고 모든 문제가 끝나거나 해결될까? 
이 사례를 보고 인간의 양심은 유한함을 절실히 느낀다. 
유혹은 처음부터 큰 게 오지 않는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와서 처음 세운 기준을 무디게 만든다. 
떳떳한 행위가 아님을 알지만 여기서 생기는 이익을 아는 순간 모르는 척할 수 없는 게 인간이다. 자제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비윤리적 행동이 촉진되고 유혹을 거부하기 힘들어진다. 부정행위를 하면 할수록 조금씩 쉬워지고 좀 더 편해져 이제 아무 잘못이 없다고 느끼는 지경까지 온다. 
경리직원은 자신의 행위가 불법인지는 알았지만 자기가 걸릴 줄 몰랐으리라. 나중에 어떻게든 돌려 막을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에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늘 완벽하게 합리적인 방식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자신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믿고 그게 진실이라고 확신한다. 자기합리화와 자가당착이란 오류에 쉽게 빠진다. 
매우 정직한 사람이 바르게 살다가 나쁜 짓을 하면 뇌는 그걸 기준선에 비례해 그 차이만큼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부정직한 사람이 나쁜 짓을 많이 해도 뇌는 크게 반응하지 않지만 말이다.나쁜 짓이 반복될수록 나쁜 짓의 부정적인 가치나 느낌은 점차 없어진다. 그래서 부정행위를 많이 하게 된다. 이게 인간의 본성이며 누구도 인간의 본성을 이길 방법은 없다. 따라서 사람들이 부정행위를 저지를 때 그들의 도덕이나 양심을 탓하기보다는 부정행위를 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만한 요인을 최대한 먼저 제거해야 한다. 
관리시스템에 구멍이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부정행위의 달콤한 유혹을 매일 같이 겪고 있는 셈이다. 구멍 난 환경에서 인간의 도덕성이나 양심을 시험할 게 아니라 유혹에서 최대한 멀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문제의 아파트는 자치관리로, 자치관리는 위탁관리에 비해 시스템이 허술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실질적 관리책임자인 소장이 아파트 관리의 책임을 입대의에 미룰 수 있기 때문이다. 
경리직원은 분명히 일을 잘하고 근무태도도 좋았을 것이기에 회계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경리직원을 믿었던 게 화근이라고 본다. 
부정행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도덕적·양심적 유혹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고 관리시스템을 촘촘히 정비해야 하며 이를 철저히 실행해야 한다. 이렇게 시스템을 만들고 실행하는 것은 사람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인 것이다. 

김호열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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