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고영덕 관리사무소장
대전 리베라아이누리아파트  

 

지난해 송년회 모임에서 각 동아리별로 장기자랑을 준비하라는 집행부 요청이 있었다. 내가 속해 있는 독서 동아리에서는 누구를 내보낼까 고민하다 나를 당첨시켰다. 회원들이 선뜻 나를 지명한 것은 과거에 내가 오카리나 연주를 한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연을 1주일 정도 남기고 결정이 된 터라 무슨 곡을 어떻게 연주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연하는 사람은 무대에 선 경험이 아무리 많더라도 매 공연마다 장소와 분위기, 관객이 달라 불안함이 밀려온다. 더욱이 초보자는 긴장되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실수 없이 그동안 준비한 대로만 순조롭게 이뤄지길 소망해보지만 쉽지 않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관객들이 몰입해 들어주고 그들의 마음에 공감대가 형성돼 호응하며 박수를 쳐주고 앙코르까지 외쳐준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는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관객들은 공연자가 잠깐이라도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길 바랄 것이다.
공연의 관객 연령이 50대 중반부터 70대까지 분포돼 있고 남성회원 비율이 80% 정도인 점을 고려해 이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곡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많은 사람들이 동심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을 고려해 이런 측면의 감성을 불러일으킬 만한 곡과 손쉽게 따라서 흥얼거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무대 상단 스크린 두 곳에 원곡 가사를 비추고 관객들이 따라 부르도록 하면 관객들이 보다 쉽게 연주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이는 실제 공연 때도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 점이 공연 중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발생시켰다. 장기자랑 공연 중 간혹 무대 위로 분과원 등이 올라와 공연자 연주와 반주에 맞춰 옆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데, 이때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크게 부르는 경우 공연자가 연주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공연자는 반주를 통해 곡의 빠르기를 조절하며 연주를 하는데 무대를 점령한 이들의 노래 소리, 즉 ‘떼창’에 파묻혀 반주를 정확하게 듣지 못해 자칫 흐름을 놓치기도 하는 것이다.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이들이 박자에 맞춰 정확하게 부르면 문제가 덜하겠지만 술도 한잔 한 터라 박자감각이 떨어지고 제멋대로 부르다 보니 정작 악기 연주 시 집중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 것이다. 나는 이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협연인 경우 한 사람이 틀리더라도 다수의 흐름에 따라가면 되지만 솔로로 연주할 경우 이런 상황은 마치 재앙과 같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고 나니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단지 준비한 공연을 계획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때문이 아니라 무사히 완곡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무대에 올라와 공연을 함께 즐기는 이들과 더 흥겹게 어울리지 못한 점이 내내 아쉬움을 자아냈다.
반주에서 곡이 연주되고 있고 부수적으로 내가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니 연주를 중간에 멈춘다고 공연을 망치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엇박자로 악기를 끝까지 연주하는 것보다는 무대를 점령한 분과원들과 어깨동무를 한다든지 같이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른다든지, 상황에 맞춰 장기자랑의 흥겨움을 더 빛낼 수 있는 기지가 부족했던 점을 계속 자책했다. 이것이 바로 초보자와 능수능란한 경험자의 차이가 아닐까?
앞으로 이러한 기회가 얼마나 주어질지 모르지만 초보 딱지를 떼기 위한 과정이자 큰 배움을 가져다준 기회였다고 생각하니 감사함이 밀려든다. 사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더 단단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니 마음이 편하다. 
이런 나지만 나에 대한 악기의 사랑은 아직도 식지 않고 있음을 느껴본다. 
“악기야 고맙다. 함께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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