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파트 승강기 교체공사와 관련해 이상한 판결이 나옴에 따라 공동주택 관리현장에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관련기사 1·2면>
서울 모 아파트에서 승강기 교체공사를 시행하는데 공사비로 써야 할 장충금이 부족하자 설문조사를 벌인 후 인상한 게 발단이 됐다. 입대의는 매월 2만원씩 걷던 장충금을 승강기 교체공사비 조달을 위해 5만원으로 인상했고, 부당함을 느낀 1층과 2층 입주자들이 법원에 소송을 걸었다. 법원은 이에 대해 원고의 손을 들어주며 “1층과 2층 가구들은 인상분 3만원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현실법과의 정면충돌이다.
이 판결엔 더 많은 문제제기가 유발될 가능성이 내포돼 있다. 승강기 교체공사에 1, 2층 가구의 공사비를 면제해야 한다면, 3층 입주자 역시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은 고작 3층까지 기껏해야 6~7m를 이용하는 데 비해, 50층의 입주자는 무려 150여 m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사용량에 따른 비용 부담이 합리적이라면 10m를 움직이는 4층 가구가 10만원의 공사비를 부담할 때, 150m를 오르내리는 50층 사람들은 150만원을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것이 정확한 셈법이다.
게다가 가구당 구성원 수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한 사람만 사는 1인가구에 20만원의 공사비를 부과한다면, 5인이 사는 다자녀가구엔 100만원을 내도록 하는 게 더욱 합리적이다.
기왕 시작한 김에 더 정확한 비용을 추산하자면 한 집당 하루에 몇 번이나 승강기를 이용하는지까지 통계를 내는 게 좋겠다. 직장인과 전업주부는 사용빈도가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여기에 더욱 세밀한 과학과 합리를 추구하자면 각 가구원의 체중도 계산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20㎏의 유치원생과 100㎏의 성인이 승강기를 탈 경우 모터와 로프에 가해지는 하중과 마모율이 다르니 같은 비용을 부담하는 건 정의롭지 못하다. 이렇게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정의와 합리의 한계는 끝이 없게 된다. 모든 결정을 수학식으로만 풀다 보면 의도와 전혀 다르게 ‘합리’가 ‘비합리’의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타협과 절충이 필요하다. 1층 가구엔 승강기 사용에 따른 전기요금을 부과하지 않되, 승강기교체공사처럼 공동재산관리에 대한 비용은 모든 가구가 같은 수준으로 내는 것이 합당하다는 공동주택관리법의 결론은 그냥 도출된 게 아니다.
이 대목에서 더욱 중요하고 본질적인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장기수선계획과 장충금은 미래에 있을 대수선 공사를 무리 없이 실행하기 위해 입주자들이 미리 조금씩 돈을 모아 저금해 뒀다가 공사시기에 맞춰 비용을 집행하도록 만들어진 제도다.
장기수선제도와 주택관리사제도는 대한민국 아파트를 매력적인 주거시설로 격상시켜, 전 세계가 주목하도록 만든 공동주택 관리제도의 핵심 양대산맥이다.
하지만 문제는 장충금의 부과와 적립규정이 너무 느슨하다는 데 있다. 적립요율을 입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다 보니 당장엔 적게 내는 것을 선호한다. ‘나중에 필요한 목돈은 나중 사람들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아파트도 그렇게 폭탄돌리기식으로 비용 부담을 회피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폭탄을 맞은 것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단지마다 천차만별인 장충금의 적립요율을 확실하게 명문화해야 한다.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고 집값을 잡겠다고 단언하는 정부가 장충금 요율 하나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는 건 아무래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정의와 합리에 대한 집착적이고 맹목적인 추구는 배가 산으로 향하는 비효율의 역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 하나가 공동체까지 와해시킬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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