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종단 622㎞ 울트라마라톤 완주기 ⑦

기 고 양창익l승인2020.01.15 14:56:09l11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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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익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경기도회 전 부천지부장 

 

경찰이 알려준 길로 조금 더 달리니 주로 감독관과 아까 그 친구가 있다. 그런데 표정이 아까와 사뭇 다르다. 아까는 “이번이 마지막이니 너라도 꼭 완주해야 한다”며 응원했는데 이제는 아니다. 거리가 5.5㎞ 남았는데 시간은 45분 남았단다. 그가 “한 번 해 봐…”라고 말끝을 흐리는데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포기하라고는 못 하니 그냥 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아까 갈림길에서의 소동으로 낭비한 10분이 너무 아까웠다. 내가 계산해도 객관적으로는 어렵다. 

이 구간은 많이 지쳐 이젠 1시간에 4㎞ 정도밖에 못 간다. 분명 쉽지 않지만 난 포기할 수 없었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어떤 이는 이를 이유로 포기하는 반면 또 어떤 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한다. 난 후자 쪽 성향이다. 순간 세 아이들이 생각나면서 “난 죽어도 간다!”며 다짐하고 100m 달리기하듯 죽기 살기로 달렸다.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른다. 끝없이 달리는데 왜 그렇게 CP인 팔레스가든은 안 나오는지. 사전 답사에서 확인한 곳이기 때문에 어디쯤 있는지 아는데 안 나온다. 
쉬지 않고 이를 악물며 젖 먹던 힘까지 쏟아가면서 언덕 오르고 내리기를 몇 번. 그리고 몇 코너를 지나니 드디어 저 앞 멀리 CP 앞에서 자원봉사자가 원형으로 돌리고 있는 빨간 경광봉이 눈에 들어온다. 마지막 전력을 다해 500㎞ 10CP에 제한시간 2분 전인 11일 23시 58분에 아슬아슬하게 들어왔다(누적 114시간). 
난 그대로 뻗었다. 그야말로 불꽃 같은 투혼을 불살랐다. 일체는 유심조라 했던가. 이론상으론 포기해야 할 거리지만 죽어도 간다는 마음으로 도전하니 잠재돼 있던 초인적인 힘이 나와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헐떡이며 한참을 바닥에 누웠다 눈을 떠보니 놀랍게도 멀리 강화에서 응원 나온 형이 여기저기를 주무르고 있다. 그는 “창익아 대단하다!”면서 안아준다. 그리고 뛸 때 힘을 나게 해주는 음식 중 단연 최고라는 소고기 육회를 입에 넣어준다. 고마워서 속으로 울었다. 
그때 아까 나를 응원하던 친구가 오더니 “솔직히 나는 네가 제한시간 내 못 들어갈 거라 보고 실격하면 집에 데려다 주려고 늦게까지 기다렸다. 대단하다”면서 꼭 완주하라고 응원한다. 나는 또 다짐했다. 꼭 완주해 응원해준 모두에게 보답하겠다고. 
이젠 550㎞ 11CP인 인제의 합강정휴게소로 가야 한다. 밥 먹고 잠잔 시간을 제하니 55㎞를 14시간에 가야 한다. 충분한 시간 같지만 많이 지쳐있기 때문에 여유 있는 시간이 아니다. 출발하려는데 발바닥이 따끔거린다. 양말을 벗어 보니 오른쪽 발바닥 앞부분에 지름 4㎝ 정도 되는 큰 물집이 잡혀있다. 400㎞에서 한 처치가 제대로 안 되기도 했지만 500㎞에 들어오기 위해 막판 전력을 다할 때 발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혹사해 그리 된 것이다. 동반하는 형이 “이렇게 큰 물집을 하고서 어떻게 왔어? 당장 처치를 하지 않으면 더 커지고 그 통증 때문에 결국 못 가게 된다”며 직접 처치에 나선다. 
비가 내리니 빨리 하자며 선배는 배낭에서 실을 꿴 바늘을 꺼내더니 사정없이 훅 찌른다. “아악!”하는 비명이 터질 정도로 아프다. 물집만 통과하면 되는데 물집 밑의 생살을 찌른 것이다. 그렇게 다섯 바늘을 꿰는데 밀가루 포대나 뀀직한 두툼한 실이어서 더 아프다. 그래서 그런지 얼마 못 가 물집의 통증보다 그 실이 생살을 누르는 통증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길가에 앉아 실을 다 빼냈다. 이제 120㎞만 더 가면 되니 그냥 참고 가기로 한다. 
한밤중인 새벽 2시쯤이라 그런지 큰 도로지만 차가 거의 없다. 일행 5명은 잠을 쫓고자 노래를 부르고 구령도 붙여보지만 아까 한 시간 잠으로는 많이 부족해 이사람 저사람 졸린다며 쉬고 가잔다. 모두 가능한 한 안전한 자리를 찾아 차로 변에 붙어 눕는다. 밤하늘은 혼자 가면 무서울 듯 깜깜하고 별 하나 보이지 않는다. 잠깐 누웠는데 모기떼가 여지없이 덤빈다. 
다시 출발이다. 이렇게 걷다 뛰기를 반복해 15㎞ 정도 더 가니 화양강휴게소가 보인다. 아침 6시 조금 이르지만 배도 고프고 잠깐 쉴 겸 휴게소에서 순대국밥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한다. 식당에는 미리 온 주자들 여럿이 식사하고 있는데 하나같이 잠이 부족해 복싱경기 10라운드는 뛴 선수처럼 눈이 붓고 충혈됐다. 또 면도를 못해 잡초같이 제멋대로 자란 턱 수염과 검게 그을린 얼굴까지. 출발할 때의 깔끔하고 멋진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이런 모습을 가족들이 보면 어찌 생각할까 떠올리면서 다시 길을 나선다.

양창익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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