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고

 

양창익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경기도회 전 부천지부장 

밥을 먹고 바로 뛰지 못하니 소화도 시킬 겸 앞에 가는 주자들을 뒤따라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2012년도 종단 땐 시간제한에 걸려 400km에서 접어야 했는데 벌써 450km까지 왔고 앞으로 172km만 더 가면 그렇게 열망하던 종단 완주다. 끝까지 간다고 다짐한다. 어차피 출발 전부터 전쟁 때 피난 가는 심정으로 가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피난 가는 사람이 다리가 아프다고 또는 졸린다고 피난을 포기하겠는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450km까지 15명 정도가 부상 등으로 포기했단다. 
고수들도 예상치 못한 큰 부상으로 접기도 하는 것이 이 대회다. 400km를 달려왔는데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으면 그것이 비정상 아닌가. 몸 구석구석 안 아픈 데 없고 잠이 부족하지만 정신력으로 그 고통을 참고 가는 것이다.  
달리고 걷고를 반복하다 횡성터널을 지나 473km 지점 공근초등학교 주변에 다다르니 또 배가 고파진다. 배낭에 넣어온 죽과 콜라(콜라가 소화제 역할을 충분히 대신한다)를 먹고 있는데 대회에 함께 참가했다가 길을 잘못 들어 320km에서 포기한 친구가 응원을 왔다. 친구가 서두르지 않으면 500km에서 제한시간에 걸릴 것 같다며 480km 지점인 시루봉 휴게소까지 쉬지 말고 달리라고 한다. 
주로에는 어느새 깜깜한 어둠이 깔렸다. 앞 주자들의 배낭에 묶인 경광봉 불빛을 나침반 삼아 달리길 얼마나 했을까. 땀이 비 오듯 하는데 시루봉 휴게소다. 차를 타고 먼저 온 친구가 잘 왔다며 머리에 물을 부어주면서 492km 우회전하는 연봉삼거리까지 또 쉬지 말고 가라고 한다. 
이미 많이 지쳤고 오른쪽 발바닥이 따끔거린다. 400km에서 처치했는데 또 시작이다. 하지만 500km에서 아웃되면 끝이라 생각하며 앞 주자들의 불빛만 쫓으며 달리는데 어느 순간 주로에 나 혼자다. 내 속도가 너무 늦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주자들이 빨리 달리는지 모르겠다. 앞 주자들의 경광봉 불빛들이 하나씩 나타나다 사라지는 반딧불처럼 보이더니 이내 사라진 것이다. 동시에 분명 처음 오는 곳인데도 주변이 아주 익숙하게 보인다. 수면 부족으로 인해 헛것이 보이는 등 제정신이 아닌 상태가 400km에 이어 또 시작된 것이다. 이런 데자뷔는 3일만 잠이 부족하면 여지없이 겪는다. 
1차선 도로가 마치 경칩 돌로 제방을 쌓은 커다란 법면처럼 보이고 길가의 전봇대와 가로수도 내게 달려와 뭐라 말을 걸다 옆에 붙는다. 손으로 저어가면서 홀로 끝없이 달리니 드디어 연봉삼거리가 나오고 또 한참을 더 갔더니 갈림길이다. 불안해진다. 길을 잘못 들었다간 시간제한으로 탈락될 것이 분명하다.
마침 길가 민가에 불이 켜 있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 5분이다. 늦은 시간이지만 길을 묻기 위해 까치발을 들어 불빛이 새어나오는 창을 통해 들여다보니 식구들이 TV를 보고 있다. 나는 창문을 두드렸다. 인기척이 없다. 철 대문도 두드렸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다. 그러던 중 갑자기 경찰 순찰차가 다가오더니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 허리엔 권총을 차고 있다. 그 집에서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하긴 밤늦은 시간 그것도 강원도 산골 도로가 외딴집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선뜻 나와 반겨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경찰은 내 행색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간첩이나 강도는 아님을 확인하고는 이 밤중에 마라톤 하냐고 묻는다. 나는 해남 땅 끝에서 출발해 500km 정도 왔는데 갈림길이 있어 길을 묻기 위해 민가에 간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경찰이 갑자기 호통을 친다. 
“아저씨 죽으려고 환장했어요?”라며 운전자들의 신고가 이미 여러 번 들어왔다고 말한다. 분명 나는 도로의 황색선 밖으로 안전하게 달린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이 혼미해져 차도를 갈지자로 왔다 갔다 했나 보다. 이를 본 운전자들이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경찰은 안전하게 갈 것을 주의 주며 길을 알려주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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