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두칼럼 24

김영두 교수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인공지능이 인간 대체할 순 없어 자동화 가능한 사법적 영역서 한정적으로 활용할 뿐

 

2016년 3월 9일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날은 바둑계에서는 신과 같은 존재였던 이세돌이 한낱 기계에 불과한 알파고에 패배했던 날이다. 연이은 2국과 3국의 패배. 바둑이 진행될수록 이미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머리로는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세돌이 신의 한 수를 두면서 4국에서 승리했을 때는 전체 대국의 승패와 상관없이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그 감격의 뒤편에는 상대의 실수를 이용해 이긴 것 같은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모든 대국이 끝나고 혼자서 내가 좋아하는 프로기사들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했다. 한없이 높아만 보였던 그들이 갑자기 나와 같은 평범한 인간이 돼 버렸으니 입신(入神)이라는 말이 어색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우려가 현실화됐을까? 
이세돌은 은퇴하는 이유의 하나로 인공지능을 꼽았다. 이세돌답게 은퇴기념대국의 상대로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을 선택했다. 
‘한돌’이라는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과 대국을 펼쳤는데, 그냥 맞바둑이 아니고 2점 접바둑이었다. 맞바둑을 둬서는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인데, 그마저도 한판을 이기고 두 판을 졌다. 
이세돌과 알파고가 대국을 펼친 이후로 알파고나 한돌과 같은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은 더욱 발전했다. 
이제는 인간이 이길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바둑계에서 신이라고 생각됐던 프로기사들은 인간계로 내려앉았고 인공지능은 천상계로 올라가 버렸다. 더 이상 인간은 알파고의 적수가 될 수 없으며, 알파고는 동네기원에서 바둑을 두는 아마추어들의 바둑판을 바라보는 프로기사와 같은 존재가 돼 버렸다. 
공교롭게도 그 해 인공지능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본격적으로 인공지능 공부를 하게 됐다. 
그 당시에는 알파고의 여파로 인공지능에 관한 관심이 높았다. 열풍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터미네이터와 같은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무슨 문제만 생기면 인공지능에 맡기면 해결되겠지 하는 말들을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인공지능으로 인해서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며,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의 등장을 예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함께 인공지능을 공부하는 연구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해당 분야 전문가를 초빙해 강의를 들으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과장돼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물론 인공지능 기술은 장차 우리의 모든 것을 바꿀 것이다. 인간은 인공지능을 통해서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게 되고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거나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 같지는 않다. 아직 우리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명체는 스스로를 조직하고 보존하기 때문에 생존에 대한 본능은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생명체의 출현은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진 존재의 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존재가 진화를 거쳐 오늘날의 인류가 등장하게 됐다. 
인간의 삶에 대한 의지는 모든 생명체의 공통된 특성이니 그 기원을 알 수 있어야 인공지능에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삶에 대한 의지를 심어주는 것이 가능한지 검토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만약 그 기원을 밝힌다고 해도(인류 최대의 수수께끼가 풀리게 된다고 해도) 삶에 대한 의지가 모든 생명현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밝히는 일은 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니 욕망을 갖지 못하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정말 걱정해야 할 것은 인공지능이라는 어마무시한 기술을 독점해 이를 남용하려는 인간의 욕망이며, 인공지능 기술이 가져올 사회적 변화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지난달 18일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AI와 法 그리고 인간’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됐다. 
필자는 ‘인간’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는데 위에서 언급된 내용도 발표 내용의 일부분이다. 
사법(司法)분야에서 인공지능의 활용에 관한 여러 문제가 논의됐는데, 인공지능 판사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에스토니아에서는 인공지능 판사의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형량판단을 위해서 COMPAS와 같은 인공지능 기술이 활용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이 판사가 돼서 당사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편견 없이 판결을 내리는 일이 일반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인공지능 판사에 대한 논의는 자동화가 가능한 사법절차의 영역에 한정돼 있다. 
에스토니아의 경우에도 소액사건에 한정해 인공지능 판사의 활용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형사사건에서 인공지능이 활용된다고 하더라도 양형이나 증거와 관련해 판사에게 판단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에 한정된다. 그러니 이혼소송에서 판사가 양 당사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조언을 해주거나, 양육권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활용해 다른 인간을 지배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현실적인 두려움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불필요한 두려움이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판사에 대한 논의가 있다고 해서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는 인공지능 판사가 등장하리라는 우려를 할 필요도 없다. 인공지능이 활용될 만한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활용되고 있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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