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가기천 감사
대전 장대동 드림월드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겨울이 익어간다. 이맘때면 공연히 서둘러진다. 새해 달력을 들고 종종걸음하는 모습이 눈에 익숙하다. 송년모임 이야기도 자주 들린다. 세월에 얹혀있는 올해를 뒤돌아본다. 
굳이 손익계산을 해보자면 플러스였다고 셈할 수 있다. 우선 건강이 웬만했고 크게 상처받을 만한 일을 겪지 않았다. 이만하면 무난한 시간이었다. 새해가 눈을 뜰 무렵 밀물 썰물이 드나들 듯 당연하게 되풀이되는 나날 가운데 그래도 무엇 하나쯤 뜻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올해는 무슨 일을 해볼까 생각했다. 이웃에게 작은 미소를 주면서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렇게 해서 마음먹고 해온 것들이 있다. 누구에게도 말은 하지 않았다. 하다 보면 공기가 스며들 듯 주위가 알게 모르게 바뀔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니 반응이 없더라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도시화가 빨라지면서 개인주의도 따라왔다. 아파트 생활도 이런 현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웃과 어울리지 않아도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층간소음이나 담배연기, 반려동물과 관련된 일만 아니라면 굳이 몰라도 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간섭받지 않는 생활이 낫다는 생각도 한다. 
대표적인 공간이 엘리베이터 안이다. 좁은 공간에서 함께 있으면서도 멀뚱멀뚱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거나 애먼 거울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이미 몇 번이나 봤을 광고물에 시선을 주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길어야 몇 십초 남짓 동안 머쓱한 분위기가 흐른다. 참 어색하고 지루한 시간이다.
그래서 타거나 내릴 때는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또는 “좋은 시간 되세요”라고 인사를 시작했다. 그 뒤로는 점점 쑥스러움이 사라졌다. 아이, 학생, 젊은이도 미소를 주는 반응을 보였다. 어느 날부터 무뚝뚝하기만 했던 남자가 먼저 인사를 했다. 청소하는 이도, 집배원이나 택배 배달하는 이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한다. 적어도 우리 라인에서는 그렇다. 이제 현관 밖으로까지 번져나가고 있다. 점점 인사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마음들을 열었다. 혹시 오는 사람이 있는지 현관 앞에서 잠시 기웃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에 주위를 둘러보는 변화도 일어났다.
주차문화를 바꿔보기로 했다. 우리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기둥과 기둥사이에 세 대를 댈 수 있다. 세 곳 중에서 어느 곳이든 한 대가 넓게 차지하면 나머지는 공간이 좁아져서 두 대만 주차할 수 있게 된다. 비집듯 세 대를 주차하면 옆 차가 문을 여닫는 데 불편할 뿐 아니라 자칫하면 흠집을 남기게 될 수도 있다. 자동차 대수가 많아지고 크기가 커지면서 주차가 더욱 어렵게 됐다. 도로에 주차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고, 관리사무소에서 ‘위반 경고장’을 붙이면 불평도 일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주차 효율을 생각하고 세 곳 중에서 가장자리에 주차를 할 때는 되도록이면 기둥에 바짝 붙였다. 자연히 가운데 주차를 하는 차량이 비교적 넉넉하게 주차를 할 수 있게 됐다. 기둥에 가까이 붙여 주차하려니 어느 때는 차가 기둥에 스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익숙해져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고, 이제 대부분의 차들이 그런 방식으로 주차를 하고 있다. 말이나 글로 그런 제안을 한 것은 아니었다. 
헬스장의 샤워장을 사용하고 나서 거울과 바닥을 말끔히 씻어냈다. 비누 놓은 자리를 닦고 비누에 붙은 머리카락은 뗀 다음 거품까지 없애 올려놨다. 이제 다른 사람들도 대개 그렇게 한다. 꼭 내가 영향을 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달라지고 있다.  
작은 행동에 꾸준함을 얹으니 변화가 보였다. 새해에도 계속할 것이다. 더불어 사는 아파트를 위해 무언가를 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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