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익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경기도회 전 부천지부장 
 

나도 조금 휴식 후 8CP인 400㎞ 충주 주덕의 대곡갈비식당을 향해 달린다. 그동안의 통계상 대개 400㎞만 넘기면 특별한 부상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완주한다. 포기 등으로 탈락할 주자들은 대부분 400㎞ 정도에서 걸러지는 것이다. 나도 위기가 있었다. 
2012년 국토종단(부산태종대~파주 임진각 537㎞) 대회 때 경기도 광주의 400㎞ 지점에 약 7분 늦게 도착해 시간제한으로 실격당한 기억이 있어 일단 400㎞는 넘기자 다짐하며 다시 힘을 내기로 한다. 362㎞지점 북이초등학교 입구를 지나는데 대회 중 처음으로 비가 오기 시작한다. 적당히 오면 시원하고 좋지만 장맛비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 쏟아붓고 길게 온다. 그런데 다행히 이번 비는 뛰기 어려울 정도로 앞을 가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비가 오면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 우의를 입지만 동작이 불편하고 신발이 물에 젖으니 길어지면 발바닥이 물에 불어 문제를 일으키며 밤엔 춥다. 377㎞ 지점의 백마령터널을 지나는데 순간 정신을 잃는다. 혼자 가니 더 그런 것 같다. 
“내가 왜 여기를 가고 있지? 여기가 강원도인가?” 횡성터널로 착각하는 것이다. 지치고 잠이 부족하니 정신이 왔다 갔다 한다. 백마령터널을 지나 또 얼마를 갔을까. 상당히 많이 갔다고 생각했는데 좀처럼 주덕이 나오지 않는다. 조금 더 가니 아까 백마령터널 전에 동반하던, 광양에서 온 주자가 길가에 앉아 쉬고 있다. 왜 이제 여기냐니까 그도 졸려서 걷다 쉬는 것을 계속했단다. 같이 갈 사람이 있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데 차가운 밤비는 그칠 줄 모른다.
400㎞까지 동반하기로 하고 출발하는데 제정신이 아니니 자꾸 길가 수로에 빠져 발목이 긁히지만 아픈 줄 모른다. 가능한 길 안쪽으로 달리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갈지자로 가다 보니 그런다. 분명 400㎞에 가까이 가고는 있는 것 같은데 앞 주자는 안 보인다. 얼마를 더 갔을까. CP에 다 왔는지 차 한 대가 접근하며 말을 건다. 서울과 인천에서 응원 나온 62년생 범띠 친구들이 CP에서 기다리다 마중을 나온 것이다. 얼마나 더 가야 하냐고 물으니 2㎞만 더 가면 된단다. 그들은 CP에서 기다릴 테니 빨리 오라는 말을 남기고 간다.
“아…. 2㎞가 왜 이렇게 먼가.” 2㎞면 금방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안 나온다. 조금 더 가니 다른 사람이 다가온다. 얼마나 남았냐니까 또 2㎞ 남았단다. 성질이 나기 시작한다. 아까 친구들이 2km 남았다고 해서 달렸는데. 
“나 안 가!” 배낭을 벗어 도로에 내던진다. “지금 장난하는 거야 뭐야? 얼마나 달렸는데 또 2㎞가 남았냐!”며 소리치니 주최 측에서는 장난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이미 나는 제정신이 아니다. 
안 간다는 말에 동반하는 주자가 “형님 다 왔어요,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소리치며 나를 달랜다. 길가 풀밭에 앉아 버티고 있는 나를 달래는 그의 얼굴이 땀과 빗물로 흥건하다. 마치 전쟁영화 속 부상병이 전우에게 자신을 버리고 피신하라고 하는데도 전우가 포기하지 않고 흠뻑 땀에 젖은 채 부상병을 부축해 가는 모습과도 같았다. 순간 진한 전우애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다시 달려 드디어 400㎞ 8CP에 들어온다(10일 22시 21분 도착, 제한시간 23시, 누적 88시간).
이렇게 힘들게 들어왔는데 이게 이번 대회 첫 번째 고비일 뿐이었다. 500㎞ 들어갈 때는 더 기막힌 고비가 기다리기 때문이었다. 응원 나온 인천지맹 회장과 회원들, 친구들이 400㎞에 들어온 나를 위해 박수를 치며 맞아주는데 내가 하도 힘들어 보였는지 짐차에서 내 짐을 대신 가져다주고 닭죽을 건넨다. 
이미 식당 안은 자고 일어나 출발할 준비를 하거나 식사하는 주자들로 가득하다. 식사, 샤워, 환복, 발바닥 물집 처치 후 CP인 식당을 23시까지는 나가야 하는데 허둥대기만 한다. 우선 닭죽만 빨리 먹고 다 생략한 후 발바닥 물집만 처치하고 나가려 하는데 바늘과 실이 보이지 않는다. 배낭 어디에 있을 텐데 못 찾는다. 보다 못한 회원이 포기하는 친구로부터 바늘과 실을 얻어왔는데 실을 바늘구멍에 끼우질 못한다. 급하니까 더 안 된다. 시간은 또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연맹회장과 식당주인은 빨리 나가라 소리친다. 하는 수 없이 응원 나온 친구들과 인사하고 길가 버스정류장 등불 아래서 억지로 실을 끼워 발바닥 물집을 처치했다. 
처치 후 다시 주로에 나서는데 다른 주자들은 이미 다 출발해서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일회용 우의가 찢어져 거의 비를 다 맞고 왔더니 춥다. 시간을 보니 밤 11시 반이다. 춥고 비는 계속 내리는데 동반자도 없고 혼자 가려니 마음이 약해진다. 방금 전 친구 들과 완주를 약속한 기억은 가물하고 포기해야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꽉 채운다. 포기하고 싶은 심정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나 좀 너희 집으로 데려가면 안 되겠냐?”고 물었지만 대답이 시원찮다. 아무리 친구라도 밤 12시가 다돼 쉰내 풀풀 풍기며 데리러 와달라는 사람을 반갑게 맞이하겠는가. 나라도 비슷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털레털레 걸어가는데 어떤 주자 하나가 마트 안에서 뭘 사고 있다. 저 사람하고 같이 가면 되겠구나 싶어 나도 마트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과 인사하고 같이 가기로 한다. 그도 혼자라 걱정했는데 잘됐다며 끝까지 같이 가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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