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정선모 
서울 노원 불암대림아파트
도서출판SUN 대표

 

모처럼 친구를 만나 차를 마시러 카페에 갔다. 음료를 주문하는데 여름철에만 파는 특별 음료였던가 보다. 직원이 “그 음료는 지금 안되세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다른 음료를 고르고 결제하니 “주문되셨어요”, 조금 기다리니 “주문하신 음료 나오셨습니다”라고 한다. 그곳에서 차를 마시는 내내 잘못된 존댓말을 수정해주지 못한 것에 영 마음이 불편했다. 한글날 즈음이어서 더 그랬나 보다. 
내가 들른 카페뿐만 아니라 식당이나 백화점 같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존댓말을 아무 곳에나 붙이는 경우를 종종 본다. 백화점에서 장갑을 하나 사는데 “오만 원이십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우리말에는 사물에 존칭을 붙이지 않는다. 존칭은 사람에게만 사용할 수 있으며, 나보다 윗사람에게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내가 만난 식당 직원이 한 말을 바로잡는다면 “그 음료는 지금 주문이 안 됩니다” “주문됐습니다.” “주문한 음료 나왔습니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TV의 토크 프로그램에서 어느 참석자가 “우리 춘부장께서는 지금도 고향을 지키고 계십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춘부장’은 남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이 말은 ‘장자(莊子)’의 첫 부분인 ‘소요유(逍遙遊)’ 편에 대춘(大椿)이란 나무가 만년 이상을 살았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아득한 옛날 대춘이라는 나무가 있었는데 8,000년 동안은 잎이 피어나서 자라는 봄이고, 다시 8,000년 동안은 잎이 지는 가을이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상상의 나무인 ‘대춘(大椿)’이나 ‘춘(椿)’이 장수의 비유로 쓰이게 된 것이다. 남의 아버지를 ‘춘부(椿府)’나 ‘춘부장(椿府丈)’이라고 불러서 장수를 기원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후에 알기 쉬운 춘(春)을 사용해 ‘춘부장(春府丈)’이라고도 쓰게 됐다. 
그 방송을 본 아이들이 ‘춘부장’을 자기 아버지를 높일 때 사용하는 것으로 알게 될까봐 걱정이 앞선다. 공영방송에서 이렇듯 언어를 잘못 사용하는 것을 볼 때마다 그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 묻고 싶다. 그렇지 않아도 국적불명의 외래어 남발, 줄임말이나 은어(隱語), 속어(俗語) 등이 무분별하게 확산돼 우리말의 파괴나 훼손이 갈수록 심각한데 이를 묵인, 조장하는 곳이 바로 TV를 비롯한 언론매체여서 더욱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유명 요리가 방송에서 한 “얼마나 맛있게요”라는 말이 요즘 한창 유행하고 있는데, 이 말도 “얼마나 맛있는데요”라고 해야 맞다. 
우리말을 제대로 알고 사용하는 건 이 땅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다.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려면 어렸을 때부터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함께 꾸준히 관심을 갖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르게 말하는 것은 자신은 물론 일상생활 속에서 만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품위와 예의를 갖추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아닐까?
우리 민족의 정신이 담겨있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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