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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익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경기도회 전 부천지부장 

 

대회 규정상 매 50㎞ CP마다 제한시간(매 50㎞ CP를 제한시간 안에 통과하고 최종 150시간 이내 골인해야 완주로 인정)이 있는데 1CP인 전남 강진의 청자골식당을 7일 오후 1시 30분쯤 들어왔다(제한시간 오후 3시). 식당에서 제육볶음 등을 쌈 싸먹는 모습을 본 전 연맹회장은 “야! 너 먹는 것 보니까 완주하겠다”고 한다. 
대회는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 또는 장맛비를 온 몸으로 맞서며 일주일을 버텨야 하는 것이라 하루에 식사를 다섯 번 정도 해야 한다. 땀이 비 오듯 해 힘들어 밥을 먹어도 얼마 안 가 금방 배가 고파진다. 배가 고프면 발이 나가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차도 연료가 떨어지면 움직이지 않는 것과 똑같다. 또 밤중엔 식당을 이용할 수 없으니 배낭에 먹거리를 지고 가든지 편의점을 이용해 허기를 해결해야 한다(주최 측에서는 매 100㎞ 단위 CP에서만 식사를 제공하고 나머지는 주자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강진을 지나 2CP인 100㎞ 전남 나주 남원식당을 16시간 30분에 들어왔다(7일 22시 30분). 많은 사람들이 늦어도 15시간에는 2CP에 들어와야 시간 운용에 여유가 생긴다고 했지만 나는 나만의 계획대로 체력을 안배하면서 가능한 피로도를 낮추는 것에 중점을 두고 계획을 짜 그에 맞춰 진행했다. 
다행히 발목보호대를 해서인지 오른쪽 발목의 통증이 심하지는 않았다. 속으로 ‘발목아 일주일만 버텨줘라’고 사정했다. 사정한 것이 통했는지 대회가 끝날 때까지 발목의 통증은 달리는 데 큰 장애가 되진 않았다. 
주최 측이 제공한 식사 대신 나주가 고향인 동료의 누이가 오리백숙과 홍어 등을 푸짐하게 준비해와 배불리 먹고 3CP인 전남 담양 죽녹원을 향해 출발하는데 한밤중이다. 앞 주자들의 배낭에 꽂힌 경광봉 불빛을 나침반 삼아 밤새도록 달리다 보니 어느새 아침이 밝아온다. 
쉬지 않고 달려서일까 배가 고파온다. 새벽에 문을 연 식당은 없고 광주에 들어오니 편의점이 있다. 죽과 콜라를 사먹고 다시 달리는데 많은 주자들이 길가의 버스정류장이나 주유소 바닥에서 자고 있다. 나도 자꾸 눈이 감긴다. 종단 같은 초 장거리 대회에서 졸리는 것을 참고 계속 가다가는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실제로 역대 종단과 횡단대회에서 3명의 주자가 차량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졸리면 무조건 자야 한다. 가능한 안전한 버스정류장이나 식당 또는 주유소 뒤편에서 잠깐이라도 자야 제대로 달릴 수 있다. 잠을 위해 여관이나 차량 또는 사우나 등에 가면 실격이다. 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졸면서 가면 본인은 바로 간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갈지자로 가거나 제자리에서 맴돌기 때문에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밤에는 어디서든 자기가 쉽지 않다. 옷과 몸에서 땀에 절은 쉰내 등 냄새가 나서인지 그 동네 모기들이 다 덤빈다. 가능한 낮에 잠깐씩 쪽잠을 자고 상대적으로 시원한 밤엔 꼬박 달려야 거리를 줄일 수 있다. 
광주를 지나 담양 가는 길에 나무로 만든 팰릿이 보여 동반하는 주자와 누웠는데 눕자마자 구멍 사이에서 모기들이 급습한다. 순식간에 열 방은 물린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얼마를 더 달리다가 24시 식당에서 순대국밥을 먹는데 주인이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 해남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달리는 대회에 참가 중이라니까 대단하다며 밥 먹고 한숨 자고 가라 한다. 몸에서 냄새가 진동하는데 양파 즙까지 주면서. 정말 고마웠다. 나오기까지 약 30분 정도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식당을 나와 담양을 향해 달려가는데 앞뒤의 주자들이 안 보인다. 식사와 잠깐의 잠까지 40분 정도 걸렸는데 벌써 다 지나갔나 보다. 
눈이 부신 뜨거운 햇살을 정면으로 맞으며 32㎞ 뛰고 100m 걷기를 반복하니 담양 죽녹원 주변 150㎞ 3CP가 나온다(8일 오전 10시, 제한시간 11시 30분). 광주 전남지맹이 준비한 닭죽을 먹고 이제 4CP인 200㎞ 전북 정읍의 산외를 향해 가야 한다. 출발하려니 그야말로 작열하는 태양이 구워먹을 듯 이글거리면서 대지를 뜨겁게 달군다. 눈이 부시고 숨이 턱턱 막힌다. 이틀째인데 벌써 주자들 얼굴과 다리는 벌겋게 익어간다. 햇볕가리개와 고글을 쓰지만 덥기는 마찬가지고 땀은 줄줄 흐른다. 자연을 이길 수는 없고 시간에 여유가 있어 가로수로 그늘진 인도에서 쉬어가기로 한다. 30분 정도였지만 그래도 조금 낫다. 
다시 출발, 추월산 중턱을 오르는데 반대쪽 차선으로 수박을 가득 실은 트럭이 지나친다.
“스톱!” 하고 소리치자 수박농부가 후진해 우리에게 커다란 수박을 거저 준다. 덕분에 일행 7명은 설탕 같이 단 수박으로 당분과 수분을 충분히 보충했다. 아직 시골 인심은 남아 있는 것 같다. 
추월산을 넘어 순창 복흥면을 지나 소고기가 싸고 맛있기로 유명한 정읍 산외의 4CP인 200㎞에 8일 20시 20분에 도착한다(제한시간 21시 45분). 그때 같이 들어온 주자 하나가 허리부상으로 포기한다. 평소 스피드가 좋은 50대 초반의 젊은 주자였는데 역시 종단은 장담을 할 수 없다. 날씨와 먹거리, 잠 그리고 발바닥 물집 등 변수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하늘이 도와야 완주가 가능하다는 말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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