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김미정
서울 더샵서초아파트 

아이들을 키울 때는 외출이 힘들기에 더 하고 싶은 것이 많았나 보다.
강변역 구의동에 살며 둘째 녀석을 유모차에 태우고 에어로빅 하러 다닌 지 어언 33년이 흘렀다.
어느 날 음악 소리에 녀석이 앉은 채로 요동을 쳤는지 유모차 밑동이 빠지는 바람에, 녀석이 유모차 아래로 빠져나온 것을 나는 모른 채 흔들기에 바빴다.
정신없이 흔들고 있는 이 엄마를 향해서 슬금슬금 기어오고 있지 않은가!
“세상에나, 으악!” 춤추는 아줌마들한테 녀석이 밟힐 뻔한 것을 얼른 구해내고 한숨을 쉬었다. 
엄마들도 깔깔깔 하며 한바탕 웃었다.
엄마를 향해 두 팔 두 발로 포복을 하며 돌진해 오던 녀석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때론 그 신나는 음악 속에서도 잠이 왔는지 유모차에서 잠에 빠진 녀석의 모습도 떠오른다.
또 한 가지, 그때 3인 1조가 돼 12팀의 에어로빅 경연대회가 있었다.
나 같은 몸치, 춤치 아줌마가 에어로빅 대회에 나가다니!
언제나 앞줄 가운데서 최고로 잘하는사람이 유모차까지 끌고 오는 나를 잘 봤는지 함께하자고 했고 또 다른 한 사람도 오랜 베테랑이었다. 난 어리바리하니 그냥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두려고 했다. 그런데 두 형님의 마음가짐이 대단했다. 셋이서도 어지간히 연습을 했고 집에서는 아들 재워놓고 거울 보고 뛰면서 순서를 외웠고 분명한 동작을 위해서 혼자서도 이 궁리 저 궁리를 했다. 드디어 대회 날, 우리 팀 두 명과 함께 장만한 초록색 에어로빅 옷을 입고 미친 듯이 뛰었다. 두 베테랑 형님들과 척척 사인이 맞았고 정확하게 동작하고 여유 있게 웃어가면서 신나게 움직였다. 그날도 아들 녀석은 유모차에서 나를 응원했다. 그날을 위해 튼튼한 유모차까지 장만했다. 경기에 임하는 나의 자세가 대단했다. 
결과는 우리가 1등. 정말 정말 행복했a다. 나 같은 몸치가 에어로빅에서 1등을 하다니 믿기 힘들었지만 믿어야 했다. 두 형님들과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을 췄다. 사람들은 유모차에 있는 아들 덕분이라며 축하해줬다.
상품을 한 보따리 유모차에 걸고 싣고 들고 오면서 어찌나 좋던지. 온 세상이 내 것 같았다. 고급 6인용 식기세트와 유명 브랜드 블라우스, 찰떡 한 상자, 더 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음 날 우리 팀 형님들이 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애썼고 아들도 애썼다고 하면서 소고기 두 근을 사줬다. 세상에나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을까! 형님들 덕분에 내가 상을 받았는데 내가 오히려 받은 게 너무 많다. 
그 형님들 지금 80이 다 넘었을 텐데…. 건강하고 행복하면 좋겠다. 아이들 키우며 갇혀 있던 때라 더 뛰쳐나가고 싶었던 시간들이었다. 강변카페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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