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색저널리즘에 이용당하는 K-apt

한 인터넷사이트 “나는.. 관리비 호갱이었다”
자극적・선정적 비속어 동원 비아냥 - 조회수 올리기
이경석l승인2019.11.14 15:41:58l11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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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현장 격분 “K-apt와 언론이 
입대의와 관리사무소 도둑으로 몰아”

 

온라인에 황당한 사이트가 등장했다. ‘나는.. 관리비 호갱이었다’는 자극적 간판을 내건 ‘아파트관리비 검색기’다.
모 언론사 인터넷사이트엔 지난달 29일부터 ‘연 85만원 내라니 냈다... 난 아파트 관리비 호갱이었다’는 제하의 기사와 함께 ‘아파트 관리비 검색기, 관리비 호갱이세요? 관리비만큼은 만수르급’이란 이름의 검색기가 만들어졌다.
이 언론사 홈페이지 하단 검색기를 클릭하면 곧바로 “대한민국 국민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삽니다. 그들이 내는 관리비만 연간 20조원에 달합니다. 관리비 제대로 내고 있는 걸까요? 당신의 아파트 관리비를 분석해 드립니다”는 문구와 함께 새로운 사이트로 연결된다.
이 사이트에 들어가 지역별 아파트명을 입력해보니 관리비가 매우 낮은 아파트부터 가장 높은 단지까지 우측과 같은 내용의 문구들이 등장했다.
관리비가 높으면 입주민들이 무관심해 돈이 낭비되고 있다는 느낌을 풍기고, 가장 높은 수준이면 ‘만수르급 ㅠ.ㅠ’이라며 비아냥대듯 글이 떴다. 이 글들엔 모두 ‘호갱확률 00%’가 붙어있었다. 
아랍에미리트의 왕족이자 영국 맨체스터시티 축구단을 소유할 정도로 세계적 부호인 만수르의 이름까지 동원하며 관리비가 줄줄 새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일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관리현장 종사자들이 분을 삭이며 속앓이 하고 있다. 언론들이 아파트 관리비를 거론할 때마다 맹목적인 이분법 잣대를 들이대, 현실을 호도하며 입주민을 기만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트를 접한 현장 관리자들은 관리의 질적 수준은 제쳐두고 오직 관리비로만 평가한다면 직원들에게 돈 안 드는 일만 하란 얘기와 마찬가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기업 1군 건설사가 지은 신축 아파트에 근무 중인 한 관리사무소장은 “우리 아파트는 넓은 피트니스센터와 수영장, 골프연습장 등 쾌적한 주민편의시설이 많아서 그만큼 입주민 만족도가 높고, 명품 아파트에 산다는 자부심도 강하다”며 “당연히 유지관리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관리비가 비싸니 ‘아파트를 모시고 산다’고 평가하면, 현실을 정반대로 왜곡하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다른 소장은 “내가 근무하는 곳은 조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아파트여서 이에 소요되는 비용만 수백만원에 이르는데, 관리비가 비싸다고 매도당하니 단지를 아름답게 가꾸고 싶은 의욕이 꺾여 버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한 동대표는 “관리비가 싼 데만 ‘동대표가 열 일한다’고 하면, 비싼 곳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냐?”며 “주민대표와 관리사무소를 도둑놈으로 몰고 있다”고 말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또한 최초 건축 당시부터 시공사의 부실공사로 인해 하자보증기간 경과 후에도 누수, 균열, 박리 등이 수시로 발생해 수선유지비가 많이 드는 경우, 이의 책임을 관리사무소에만 지우는 것도 문제란 지적이다.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 관리자들은 언론의 개별적 문제라기보다는 더 심각한 문제가 숨어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 언론사의 검색기가 한국감정원에서 운영하는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K-apt)의 자료를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K-apt는 아파트의 종합적 현황과 관리비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단지 관리비’ 검색란에 ‘우수, 양호, 유의, 관심필요’ 등급을 표시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관리의 질적수준이나 공동체활동, 공용시설 운영현황 등을 무시하고, 오로지 돈으로 환산해 표시하기 때문. 이렇다 보니 필요한 인력마저 내보내고, 유지보수 공사를 태만히 하는 아파트가 ‘우수’아파트라 인정받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이 자료가 ‘빅데이터’란 이름으로 포장돼 아파트를 평가하는 척도로 활용되면서 곳곳에서 분란을 야기해 왔다. 여러 아파트에서 “무엇 때문에 우리 관리비가 비싸냐?”는 항의가 입대의와 관리사무소에 빗발쳤다. 심지어 지난 2016년엔 한 광역지자체에서 이 자료를 근거로 ‘위험군’을 선정하고 감사계획까지 발표해 현장의 격한 반발을 유발하기도 했다.
이후 대주관이 나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항의하면서 ‘우수’를 ‘낮은 수준’으로, ‘유의’를 ‘다소 높음’ 등 5단계로 바꾸긴 했으나, 근본문제는 남아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급여 적게 주면 ‘착한 아파트?’
모 언론사가 구축한 검색기에서 ‘착한 아파트’라고 칭송받은 아파트들은 인건비가 최하위 수준이었다. 일반 기업들은 직원급여가 낮을수록 ‘나쁜 회사’ ‘악덕 기업주’라고 손가락질 받는 반면, 관리직원 급여가 낮은 아파트는 ‘착한 아파트’라 추앙받는 것이다.
또 장기수선충당금은 향후 벌어질 대수선공사에 대비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두는 적립금으로, 대부분의 아파트가 너무 적게 적립한 상태여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럼에도 적게 걷는 아파트일수록 좋은 점수를 매기는 상태표시는 언론과 일반 시민들로 하여금 주민대표와 관리사무소를 끊임없이 의심하도록 만든다. 아파트 관련 언론보도는 특히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황색저널리즘이 판치고 있다.

#대주관 항의방문-현장 분노 전달
대한주택관리사협회(회장 황장전)는 지난달 29일 언론보도 직후 담당기자와 통화해 항의하고, 검색기 삭제와 정정기사를 요구했으며, 수용하지 않을 경우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등 법적대응에 나설 것임을 표명했다. 지난 5일엔 언론사를 직접 방문해 1차 요구사항과 함께 관리종사자들의 분노 및 주민대표 등 현장의 우려를 전했다. 이 자리에서 해당 언론은 대주관의 요구사항을 데스크에 전달하고, 검토하는 데까지 열흘 정도 걸릴 것이며, 그 기간 동안은 관련보도를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또한 관리현장의 고충에 대해서도 추후 협력방안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기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본지는 수년 전부터 K-apt의 문제점 및 관리비상태표시에 대한 현장과의 괴리에 대해 보도한 바 있으며,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받아왔다.
또한 대주관 및 입주자단체를 비롯한 유관기관의 개선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착한아파트≠우수아파트???
국토교통부와 여러 지자체들은 해마다 우수관리 또는 모범관리 아파트에 대한 선정사업과 시상식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여오고 있다. 여기에 투입되는 인력과 시간, 심사 및 포상비용이 적지 않게 소요된다.
그런데 표창 받은 아파트들 중 관리비 수준이 낮아서 ‘우수 아파트’라고 인정받은 단지는 단 한 곳도 없었다.
K-apt는 이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경석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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