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하수도관 막힘・역류 ‘비상’

근거규정 법률 아닌 고시 탓 관리감독 소홀…불법개조 제품 유통  

주방용 음식물쓰레기 분쇄기(디스포저)로 인해 하수도관 막힘·역류 및 수질오염, 하수처리장 용량 과부하 등의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디스포저의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디스포저 관련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한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은 “디스포저 사용이 하수처리장 오염부하량 증가 및 수질오염으로 이어진다는 2015년 연구결과가 있었음에도 환경부는 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고시로 주방용 디스포저의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 장관은 “그동안 디스포저 판매량이 많지 않아 적극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했으나 최근 판매가 늘어난 만큼 디스포저 판매 허용 고시와 환경 영향 여부 등을 전반적으로 다시 검토하고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 9월 신창현 의원은 디스포저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의 ‘하수도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키도 했다. 
개정안은 연구, 시험, 수출 목적 외에 공공하수도에 음식물을 갈아서 버리는 행위를 금지하고, 환경부의 ‘주방용 오물분쇄기의 판매·사용금지’ 고시 위임규정을 삭제함으로써 특수목적 이외 디스포저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1995년 하수관로 막힘과 하수처리장 오염부하량 증가 등을 우려해 주방용 오물분쇄기 판매·사용을 금지했으나, 2012년 규제를 완화하며 음식물쓰레기의 고형물 중 20%만 배출하고 80%는 2차 처리기를 통해 회수 가능한 환경부 인증제품에 한해 허용하고 이에 따른 제품의 인증이나 사후관리 등 제도운영은 환경부 고시로 운영하도록 허가한 바 있다.
신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주방용 오물분쇄기 판매 허용 이후 올해 9월까지 7만1,000여 대가 판매됐으며 올해만 전체 판매량의 33.5%에 해당하는 2만3,800여 대나 판매됐다. 

 

한 가구 배관 막히면 다른 가구까지 피해
악취 및 수질오염 등 문제도 고려해야

신 의원은 “전국의 모든 가정과 사업장에서 디스포저를 사용할 경우 하수처리장의 처리 능력을 초과하게 된다”며 “모법이 금지하는 디스포저를 고시로 허용하는 모순을 해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3월에는 디스포저의 판매·사용을 법률이 아닌 고시로 정함으로써 이에 대한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미 인증 제품 또는 2차 처리기가 없는 불법개조 제품이 유통되는 문제도 지적됐다.
자유한국당 임이자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3월 기준으로 인증된 디스포저 제품은 42개 업체의 83개, 불법 유통된 제품 적발사례는 38건으로 나타났다.
임 의원은 “법적 배출기준을 초과하는 디스포저의 불법 판매·유통, 불법 개조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시로 운영되고 있어 처벌 및 사후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임 의원은 디스포저에 대한 고시 규정을 법률로 상향해 적법한 절차를 거친 제품을 유통하도록 하는 내용의 ‘하수도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디스포저의 정의 신설 ▲현행 고시로 운영하는 제도를 법률로 상향 입법 ▲인증제도 위반사항에 대한 규정을 행위별로 세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는 신창원 의원이 발의한 하수도법 개정안(특수목적 외 디스포저 판매 및 사용 금지)과 달리 디스포저 판매 및 사용의 법적 근거를 강화하는 내용이지만 현행 디스포저 판매·사용상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동일한 문제의식이 반영돼 있다.
사용상 편의를 위해 2차 처리기를 없애거나 불법 개조한 제품은 음식물쓰레기 고형물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고, 고형물이 하수도관에 누적되면 하수관 막힘과 역류가 발생한다.  
특히 아파트의 경우 불법 디스포저 사용으로 인한 피해는 더욱 막대해진다. 전 가구 배관이 연결돼 있는 아파트 특성상 한 가구의 디스포저가 음식물 덩어리를 제대로 갈아내지 못하거나 끈적거리는 물질을 배출해 하수도관이 막히면 다른 가구에서도 하수 역류, 악취 등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며, 심각한 경우 아파트 중앙배관 등 청소나 교체공사를 해야 한다.
경남 김해시 모 아파트는 지난해 불법 디스포저로 인해 오수관이 막히는 바람에 아파트 전체 오수관을 청소해야 했다. 청소비용으로 수천만원이 든 것은 물론. 
몇몇 가구에서 환경부 인증을 받은 제품을 설치했지만 설치 과정에서 설치업자가 2차 처리(회수)가 되지 않는 불법 개조 제품을 사용하고 이에 대한 내용을 입주민에게 제대로 고지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입주민들은 설치업자로부터 “음식물 분쇄 후 물과 함께 흘려보내기만 하면 된다”고 설명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아파트 입주민은 “관할 행정청에 문의한 결과 설치업체에 2차 처리기 설치를 요구하거나 디스포저 제거 후 환불을 받아야 하며 업체가 처리해주지 않을 경우 경찰에 고발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설치를 고려하는 아파트가 있다면 오로지 편의성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설치 효과와 불법 디스포저의 위험성 등을 고려해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북 김천시 모 아파트도 디스포저에서 미처 분쇄·회수되지 못한 음식물로 인해 배관 막힘 현상이 자주 발생, 매년 업체를 통해 뚫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겨울 김장철은 고춧가루 배출(김장 통 세척 등)이 많아 1층 가구의 배관 역류현상이 잦다. 
이에 따라 관리사무소는 입주민들에게 디스포저 사용 대신 번거롭더라도 직접 RFID 종량기에 배출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설치를 고민하고 있던 아파트 입주민들이 설치를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충남 천안시 모 아파트 입주민은 “아파트 인터넷 카페나 기사 등을 통해 디스포저 관련 사고사례를 많이 접하다 보니 설치를 포기하게 됐다”며 “전문지식이 부족한 입주민 입장에서는 환경부 인증을 믿고 편리한 제품을 선택할 뿐 설치 과정상의 불법 행태까지 알아채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불법 디스포저로 인한 수질오염도 우려된다. 분쇄된 음식물이 회수되지 않고 그대로 하수관을 통해 하수처리장으로 유입되는 것이 문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디스포저를 전수조사하고 불법제품 유통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최웅식 의원은 지난해 서울시의회 물순환안전국 행정사무감사에서 “서울시에서 발생하는 음식물쓰레기는 약 7만톤가량 줄었지만 물재생센터 슬러지는 6만톤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편의성을 내세워 디스포저를 불법 변형·개조해 사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음식물을 갈아서 하수도에 버릴 경우 하수관을 막히게 하거나 역류와 악취를 일으킨다”며 “환경부의 인증을 받아 서울시 관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불법 디스포저를 철저히 조사하고 필요시 각 가정에 설치된 디스포저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불법 디스포저 사용 시 원칙적으로 설치업자에게 과태료가 부과되나 상황에 따라 소비자에게도 1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설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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