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보는 단풍이 파노라마처럼 물결치며 마음을 들뜨게 한다면 
낮게 내려앉은 도시와 공원의 단풍은 우리의 일상 한가운데 내려앉아 사색의 가을을 맞게 한다.

▲ 서울숲

설악산, 지리산 백두대간을 따라 단풍이 내려가고 북한산, 속리산, 한라산이 단풍으로 절정을 이루면 10월의 달력은 지나간다. 남쪽으로 물들어가는 단풍은 두륜산에서 11월 초·중순에 마지막 정점을 찍는다. 그때쯤이면 높은 산에서 남쪽 바닷가로 내려간 단풍은 전국 내륙의 마을과 도시를 다시 물들이며 떨어지는 낙엽은 붉은빛과 노란색으로 화사하다. 서울 정동길· 삼청동길의 은행나무와 단풍은 고궁의 담장과 어울려 한 폭의 수채화다. 도심의 단풍은 갓 구운 빵과 맛깔난 커피 냄새와 어우러진 빛깔로 소소하게 마음을 치유한다. 공원의 나무들도 각각의 수종이 제 빛깔을 드러내며 채색하니 이제 가을이 지나감을 실감한다.

 

▲ 서울숲 은행나무숲길

지하철로 가는 사색의 은행나무숲

서울숲은 도심의 공원 중에서도 사시사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다. 시민이 나무를 심고 가꾸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민간이 운영하는 공원의 숲이다. 가족단위나 연인들이 많이 찾아오는 서울숲은 원이 조성 된 지도 14년이 됐으니 아직 젊은 숲이다. 찾아오는 사람들의 단위도 가족이나 연인들의 숫자가 많고 프로그램 운영도 산뜻하다. 5개의 테마로 조성된 공원은 100여 종의 수종 중에서도 가을이면 산사나무, 마가목의 붉은 열매들이 새를 부르고 잘 배열된 단풍나무 숲은 쉼터가 된다. 그중에서도 가을을 대표하는 숲길이 있다. 은행나무숲길이다. 서울숲을 찾은 사람들 중에서도 깊숙이 들어선 은행나무숲길을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빽빽이 들어서있는 은행나무숲에는 대숲처럼 오솔길을 만들어 온통 노란빛인 가을의 정취를 가득 담아 갈 수 있다. 호젓한 은행나무숲 노란 길을 걷거나 사색에 잠기면 가을이 지나가는 것을 본다. 

 

▲ 남이섬
▲ 남이섬 메타세쿼이아길

나미나라공화국 가을 물빛에 잠기다 

이미 많이 알려진 남이섬은 우리나라에서 서울, 부산, 제주도에 이어 네 번째로 사람들이 많이 찾은 관광명소다. 해방 이후에 몇몇 가구가 농사를 지으며 터를 잡고 살던 남이섬은 이전에는 비만 오면 반쯤 잠겨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시골의 불모지였다. 1940년대 청평댐이 완공되면서 온전한 섬의 모양을 갖추게 됐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심어 지금에 이르니 사시사철 숲 냄새가 나는 지금의 섬으로 변했다. 2006년 나미나라공화국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남이섬은 가을이면 반짝이는 강물과 어우러진 단풍의 숲으로 변한다. 숲길이 있고 장작 타는 냄새가 날 것 같은 오솔길의 풍경이 있다.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메타세쿼이아길은 남이섬의 대표적인 숲길이다. 햇살에 더욱 선명한 단풍이 가을 물빛에 지금 잠겨있다. 

 

▲ 화담숲


꿈결 같은 빛에 머물다

화담숲은 LG상록재단이 자연생태환경 복원과 보호를 위한 공익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했다. 그동안 경기·광주의 곤지암리조트 투숙객에게만 출입을 허용했으나 2013년에 전면 개장했다. 
‘화담(和談)’은 고인이 된 LG그룹 3대 구본무 회장의 아호다. ‘자연 속에서 정답게 이야기 나누며 정성 들여 가꾼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고 배우며 자연이 주는 에너지를 마음껏 호흡할 수 있는 곳’ ‘고향길을 걷듯 가족과 친구와 유유자적 걷다 보면 몸과 마음이 치유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가 되살아나는 곳’을 꿈꿨다는 수목원 조성 취지가 화담숲을 잘 대변한다. 
화담숲은 산허리 경사면을 따라 유모차나 나이든 사람들도 쉽게 걸을 수 있도록 무장애길 산책로도 조성됐다. 산책로의 골짜기마다 시원한 물소리가 들리고 맑은 물이 계곡을 따라 흘러 알맞은 습도를 유지한다. 모노레일 승강장도 3곳이 있어 코스별로 숲을 만끽할 수 있다. 지금 화담숲은 단풍이 절정기다. 가을이면 400여 종의 나무들이 빛깔을 내며 작은 숲이 가을을 대변하듯 온갖 단풍이 뽐내는 자태를 만끽할 수 있다. 
화담숲 전체를 걸어서 돌아보는 데 2시간(5.3㎞)이면 족하나, 곳곳에는 하얀 구절초, 노란색 감국, 보랏빛 해국 등 국화와 가을 야생화가 활짝 피어 향기를 뿜어내니 가을의 정취는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300여 그루 소나무가 펼쳐진 ‘소나무정원’을 비롯해  분재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분재원’, 이색적인 풍광을 자아내는 1,000여 그루의 ‘자작나무숲’, 옛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추억의 정원’ 등 특색과 개성을 지닌 테마원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평일 방문 외에 주말에 방문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홈페이지(www. hwadamsup.com)를 참조해 예약해야 한다. 쾌적하고 여유로운 관람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1시간에 최대 1,600명으로 입장을 제한한다. 
단풍은 보는 시간 때에 따라서 빛깔이 달라진다. 가을비에 떨어진 낙엽과 이른 아침 생기 있는 촉촉한 빛깔의 단풍, 햇살이 눈 부신 정오의 빛깔, 어두워지는 거리의 낙엽과 단풍은 각각의 색깔들로 다가온다. 그래서 바쁜 일상은 그 빛깔로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생긴다. 그때, 낙엽이 떨어짐은 끝이 아니라 이제 새로 시작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느껴본다. 마지막 단풍과 가을의 정취를 만나러 하루의 휴가를 내 본다면, 사람들이 붐비지 않고 최적의 단풍 빛깔과 한적한 가을을 느끼기에는 평일이나 이른 아침이 좋다. 

 

이성영  여행객원기자 
(ladders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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