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정
서울 더샵서초아파트 

“동민 엄마, 혼자서만 즐겁지 말고 우리도 좀 끼워줘요, 부탁해요!”
30년 전, 큰 녀석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동네 주민들의 요청으로 집에서 노래교실을 하게 됐다. 평소 혼자서 피아노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을 알고 있는 입주민들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지금은 광진구지만 그 때는 성동구 구의동이었다. 한양주택에서 지은 한양빌라 67가구 한양그룹의 가족들이 정을 나누며 살고 있었다. 
막상 요청을 받고 보니 쑥스러웠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두 시간 동안 시간을 내기로 약속했다. 이웃을 위해 기여를 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7080, 팝송, 동요를 미리 프린트해서 나눠 줬고 피아노와 기타를 번갈아 치며 함께 노래 불렀다. 그 당시 내 피아노는 삼익에서 나온 예쁜 가정용 전자 그랜드 피아노였다. 
월요일 오전이면 20명 남짓의 엄마들은 우리 집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서 노래도 하고 삶의 이야기도 나누게 됐다. 내가 준비한 원두커피와 빵도 먹고, 각자 집에서 맛있는 간식도 준비해 왔다. 모두가 그 시간을 기다린 듯이 한 주일의 시작이 행복했다. 그렇게 강변역 한양빌라에서 강변카페의 추억을 만들어나갔다. 함께했던 엄마 중 한 명은 그 당시 불렀던 노래 ‘기도하는 마음’이 아직도 18번이라고 한다. 나도 그 노래를 지금까지 즐겨 부른다. 유심초의 ‘사랑하는 그대에게’도 지금까지 애창하는 노래다. 
세 번째 되던 날 한 엄마가 봉투를 줬다. 어머나! 돈 봉투였다. 엄마들이 만 원씩 내기로 했다면서 20만원을 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돈 받을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그런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했기에. 참 난처했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더 열심히 준비했다. 무언가 기여한다는 뿌듯함에 즐거워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묻는다. “오늘은 무슨 노래를 했어요?”라고. 그럼 나는 또 신이 난다. 큰 녀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까지 약 10개월을 그렇게 했다. 그땐 집에 컴퓨터와 프린터가 없어서 동네 문구점에 가서 악보를 프린트 해왔다. 혼자서 미리 노래를 불러보고 노래가 정해지면 이렇게 불러볼까, 저렇게 불러볼까, 노래 사이에 무슨 즐거운 얘기를 할까 하며 구상하고 상상하는 시간도 즐거웠다. 
그 당시 두 아들은 유명한 개구쟁이였다. 엄마들 중에는 같은 학교의 학부모도 많았다. 어느 날 이웃 동네의 한 학부모가 와서 내가 피아노 치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한 적이 있다. “노래교실 선생님이 동민이 엄마라고!”며 놀란 토끼 눈을 했다. 개구쟁이 두 녀석과 피아노 치는 엄마를 연결하기 쉽지 않았다고 했다. 돌아보면 나의 작은 달란트로 이웃을 위해 기여하며 추억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 감사하다. 
도시 속 전원마을의 향기를 물씬 풍겼던 곳! 10년간 더없이 안정된 정서를 누렸던 곳! 넓은 갈대밭이었던 지금의 동서울터미널 자리에서 잠자리채를 들고 뛰어다녔던 두 녀석! 많은 이웃들이 이사를 갔지만 한양빌라에서 나눈 이웃 간의 정을 간직하며 지금까지 교류를 하고 있다. 강변역을 지날 때 언덕 위의 하얀 67가구, 한양빌라 쪽을 바라보면 엄마들의 노래 소리가 들린다. 그 후 아이들 키우느라 오랜 세월 활동은 못했지만 만약 내가 계속해서 노래교실을 했다면 어찌 됐을까! 구지윤, 문인숙 선생님 같은 노래교실 대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착각을 하면 즐겁다. 그래도 그때의 흔적이 발판이 돼 늦은 나이에 음악치료사의 길을 걷기 시작해 대중을 향한 강사가 되기까지 했으니 이 또한 감사하지 않은가! 떠올릴수록 정겨운 강변카페의 추억! 문득 ‘기도하는 마음’을 ‘사랑하는 그대에게’ 불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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