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했던 중산층 가정이 사업실패와 빚더미에 올라 빈민으로 전락하는 경우는 우리 사회에서 흔히 일어난다. 갑작스런 변고로 가장을 잃고, 아이 병 치료비로 셋방 보증금마저 날려버리면 남은 가족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 가장 절실한 게 국가의 손길이다. 나라에선 이처럼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임대아파트를 지어, 맘 편히 생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제공한다.
과거엔 임대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근무하는 걸 행운으로 여기는 직원들이 많았다. 입주민들이 소탈하고 까탈스럽지 않아 일하기 편하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아무래도 내 집이 아니다 보니 관리문제에 대해 둔감할 것이란 선입견도 한몫했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에 가깝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윤관석 의원이 밝힌 주택관리공단 자료에 따르면 공공임대아파트 관리직원이 입주민으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한 사례가 지난 4년 반 동안 2,923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 10월 16일자 1면>
폭행의 경우 협박이 121건으로 가장 많았고 주취 폭행 63건, 단순 폭행 59건 등 순이었다. 흉기 협박도 24건이나 됐다. 폭언은 주취 폭언 1,319건, 단순 폭언 1,337건이었다.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말은 가진 자의 오만이고 편견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이 인간의 의지를 꺾는다. 기계처럼 일해도 헤어날 수 없는 지독한 가난은 기계까지 지치게 만든다. 그 무력감이 폭력을 낳는다.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임대아파트 관리사무소엔 아침부터 “소주 한 병만 사달라”는 사람, “관리비가 너무 비싸니 돌려달라”는 사람 등 평범하지 않은 민원(?) 때문에 정상적인 업무를 보지 못하는 상황이 왕왕 벌어진다. 법이 미치지 못하는 실태 속에 상상하지 못한 갑질도 난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대아파트는 가난한 서민의 보금자리다. 한 언론사가 수도권의 영구임대아파트 한 곳을 조사해 본 결과 여성 가구주의 비율이 전국 평균의 두 배에 달했으며, 여성 한부모가족과 홀몸노인이 입주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가장들은 대부분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거나 이혼한 뒤 홀로 자식을 키운다. 하루 10시간 넘게 판매원, 청소부, 공장생산직, 식당 서빙 등으로 척박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오래 전에 박제된 거짓말. 가난한 엄마가 막일을 하며 키운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일찌감치 밀려나고, 성인이 돼서도 자기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처지가 된다. 그런 자식을 떠나보내고 남은 엄마는 홀몸노인이 돼 쓸쓸한 노년을 보낸다. 이들에게 임대아파트는 ‘최후의 보루’다. 
몇 년 전 송파구 세 모녀 자살사건처럼 임대아파트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빈자들의 삶은 더 처절하다. 임대아파트가 더욱 필요한 이유다. 살기 좋은 임대아파트가 늘어나면 집값 폭등으로 인한 부동산 문제도 일정부분 해소할 수 있다.
윤관석 의원은 “상습적 폭행이나 폭언을 일삼는 일부 입주민에 대해선 계약 연장을 거절하는 등의 퇴거 조치가 필요하다”며 “임대주택의 사회적 낙인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경중을 따져 알코올 중독 치료나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프로그램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리직원에게 폭력 걱정 없는 노동환경을 제공하고, 노인과 여성 등 입주민의 다수인 진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임대아파트 내 무법자를 퇴출해야 한다. 
지난 4월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던 진주아파트 방화살인과 같은 유사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알코올중독이나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적인 치료방안도 필요하다. 인권을 빙자한 방치가 비극을 낳는다.
임대아파트는 지금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빈자는 보살피고, 폭력배는 추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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